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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구하는 것은?
한 집에 살던 두 여인이 거의 같은 시기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이가 죽었습니다. 슬픔과 혼란 속에서 한 여인은 죽은 아이를 다른 여인의 살아 있는 아이와 몰래 바꿔치기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두 여인은 서로 “내 아들이다”라며 왕 앞에서 맞섰습니다. 왕은 두 여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다가 갑자기 놀라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살아 있는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씩 주어라.” 그 말에 진짜 어머니는 눈물을 쏟으며 절규했습니다. “아니 됩니다!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셔도 좋으니 살려만 주십시오!” 그러나 다른 여인은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쪼개도 괜찮습니다.” 그 순간, 왕은 진짜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보고 아이를 돌려주었습니다. 그 재판을 지켜본 사람들은 경이로움에 잠겼습니다. “이 왕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구나.” 어린 왕은 사실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종에게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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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hours ago2 min read


나를 기뻐하시므로
사무엘하 22장은 다윗이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받은 날, 여호와께 드린 승전의 노래입니다. 시편 18편과 거의 같은 이 장은, 죽음의 물결과 음부의 줄이 자신을 에워쌌던 극한의 환난을 생생히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그 절박한 자리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사무엘하 22:20) ‘나를 기뻐하시므로’라는 표현은 참 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셨다는 뜻을 넘어,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으로 바라보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다윗은 자신이 의롭고 완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한 구절은 다윗의 신앙을 지탱한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거룩하심을 아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깊이, 하나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 는 관계의 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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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y ago1 min read


더 온전한 사랑
압살롬의 반란은 다윗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아들이 왕위를 빼앗으려 했고, 다윗은 수치와 아픔 속에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그는 크게 울며 외쳤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해 죽었으면 좋았을걸…” 승리의 날이었지만 왕의 슬픔 앞에 백성들은 조용히 머리를 숙였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했지만, 그 사랑이 너무 커서 왕으로서 가정과 공동체를 돌보는 책임을 잠시 잊고 말았습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일어나 백성들을 위로하십시오. ”다윗은 그제야 마음을 추스르고 성문에 나아갔습니다. 그는 압살롬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때로는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지만 단호하지 못했던 결과가 큰 아픔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사랑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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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ays ago1 min read


꼭꼭 숨어라, 그러나 하나님은 보신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11장에서 그는 고의로 죄의 길에 들어섭니다. 전쟁터를 떠나 예루살렘 궁전에 머물던 다윗은 옥상에서 목욕하던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충직한 군인 우리아의 아내임을 알면서도 사람을 보내 데려와 동침했습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선택한 그 행동이 그의 첫 타락이었습니다. 밧세바의 임신 소식이 전해지자, 다윗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죄를 감추려 했습니다. 그는 우리아를 전장에서 불러 아내와 함께 있도록 했지만, 우리아는 동료들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자신만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우리아가 아내와 동침하지 않자, 다윗은 그를 술에 취하게 해 집으로 돌아가게 하려 했으나, 충직한 우리아는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의로운 그의 태도 앞에 다윗은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듭니다. 결국 그는 밀서를 써서 우리아를 치열한 전투 최전선에 세우라 명하고, 자신의 죄를 덮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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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days ago1 min read


은혜
사울 왕가의 마지막 후손, 무비보셋.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요나단과 함께 전쟁터에서 도망치다 떨어져 두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가문이 몰락한 후, 그는 로드발이라는 외딴 곳에서 ‘죽은 개 같은’ 자신을 한탄하며 숨어 지냈습니다. 왕족의 피를 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버림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불러들입니다. 무비보셋은 두려움에 떨며 엎드립니다. “이 죽은 개 같은 종을 어찌하여 돌아보시나이까?” (삼하 9:8) 그는 왕의 칼이 자신을 벨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드럽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을 위하여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사울의 모든 땅을 네게 돌려주고, 너는 평생 내 식탁에서 왕자들과 함께 먹으리라.” (삼하 9:7) 그 은혜는 무비보셋의 어떤 공로나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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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ays ago2 min read


오늘 내가 열어야 할 ‘윈도우’는?
사무엘하 6장은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때 다윗은 온 힘을 다해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옷차림도, 체면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과 감사가 그를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창가에 서 있던 미갈은 그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코웃음 쳤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왕으로서의 품위가 먼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기뻐하는 마음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크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 안에도 그런 마음이 숨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손을 들고 찬양하거나, 감사의 눈물로 기도할 때 마음 한켠에서 부끄러움이나 냉소가 스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식어서라기보다, 우리의 시선이 너무 ‘바깥’을 향해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나타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합니다. 즐거워합니다. 기도합니다. 찬양합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우리 자녀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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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81 min read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
사무엘하 1–3장은 사울 왕조의 끝과 다윗 왕조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미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았음에도, 결코 서둘러 왕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간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곧바로 애가를 지어 슬퍼했습니다.“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삼하 1:19)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쫓았던 사울을 향해 그는 “용사”라 부르며 애도했습니다.그 눈물은 단순한 인간적 감정이 아니라,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끝까지 존중한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내전 중에 아브넬이 귀순하려다가 요압에게 암살당했을 때도,다윗은 분노 대신 슬픔으로 반응했습니다.그는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여호와 앞에서 무죄하노라.”(삼하 3:28)라고 고백하며,아브넬의 장례를 성대히 치렀습니다.복수를 외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에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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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71 min read


다윗처럼 힘을 얻고, 사울처럼 무너지지 말자
사무엘상 29~31장을 묵상할 때,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길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다윗은 블레셋 왕 아기스의 신뢰 속에 머물렀지만,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을 향해 진군하자 깊은 갈등에 빠졌습니다. 동족을 치러 나가야 하는가, 그 마음속에는 고통스러운 질문이 맴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이 닫힌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조용히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다윗은 전장에서 제외되었고, 그는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동족상잔의 죄악과 위험에서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글락으로 돌아온 다윗은 더 깊은 절망을 맞이했습니다. 아말렉의 침략으로 성은 불타고, 가족들과 모든 소유가 사로잡힌 것입니다. 부하들은 분노와 원망으로 그를 돌로 치려 할 정도였습니다. 그 가장 어두운 순간, 성경은 짧고 강하게 기록합니다 — “다윗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더라”(삼상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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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61 min read


십자가에 머물다
십자가를 향한 주님의 걸음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사랑의 선택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기드론 시내를 건너 조용히 동산에 서 계셨습니다. 유다와 병사들이 다가올 때, 주님은 평온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니라.” 그 한마디에 무리들이 물러나 땅에 엎드러졌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지키시며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이다”(요 18:9)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 주님은 사랑으로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칼을 들었을 때, 주님은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주님은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 길 끝에 십자가가 있음을 아셨음에도 사랑으로 순종하셨습니다. 빌라도 앞에서도 주님은 한 치의 두려움 없이 진리를 증언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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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31 min read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한복음 13장에서 17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는 여정이 가장 절절하게 드러나는, 다락방의 마지막 시간입니다.“자기들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이 한 구절이 모든 이야기를 요약합니다. 주님은 죽음을 앞두시며 이미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부인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친히 씻기시며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노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니라”(요 13:15, 34). 십자가의 고난을 목전에 두고도 예수님은 권위와 힘이 아닌, 종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것은 곧 십자가에서 보여 주실 극한의 사랑과 희생의 예고편이었습니다. 14장에서 16장으로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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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2 min read


선한 목자와 부활의 생명
예수님은 사역하시는 동안 여러 장면을 통해 자신이 걸어가실 십자가의 길 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깊이 드러난 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시며, 자신이 “세상의 빛” 이심을 밝히십니다. 어둠 속에서 눈을 뜨게 하신 그 일은 단지 한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킨 사건이 아니라, 죄와 절망에 갇힌 인생을 새 생명으로 이끄시는 구원의 표징 이었습니다. 이어서 10장에서는 예수님의 마음이 더욱 깊이 드러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요 10:11). 예수님은 사랑을 말로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아시며, 잃은 양을 끝까지 찾아 자신의 생명 을 내어주신 참된 목자이십니다. 11장에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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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2 min read


하늘에서 오신 사랑, 다시 하늘로 가신 사랑
요한복음 5장에서 8장까지 천천히 읽다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을 따뜻하고도 깊이 울립니다. 그분은 조용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나는 위에서 왔다. 그리고 다시 가리라.” 5장에서는 병든 이를 일으키시며, 아버지로부터 받은 생명의 권위를 온유하게 드러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늘의 선물이셨습니다. 6장에 들어서면서 그 사랑이 더욱 따뜻하게 펼쳐집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요 6:51)라고 다섯 번이나 반복하시는 그 음성 속에, 우리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어서 “인자가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하려느냐”(요 6:62) 하시며, 내려오심이 결국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부드럽게 예고하십니다. 7장은 조금 서글픈 전환입니다. “내가 잠시 너희와 함께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리니”(요 7:33). “내 시간이 아직 이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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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312 min read


고난주간, 십자가 예고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고난주간을 맞아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합니다. 니고데모에게 하신 이 말씀은 주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 또 왜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는지를 가장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그 말씀 속에는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극진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라, 아들을 통해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요 3:16-17). 십자가는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구원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습니다(요 3:19).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실상입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빛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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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302 min read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사무엘상 3장의 그 밤, 어린 사무엘은 세 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 제사장에게 달려갔습니다.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그것이 주님의 부르심인 줄 몰랐습니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던 탓입니다. 세 번째에야 엘리는 깨달았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를 부르시는 것이로다.” 그리고 사무엘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분이 다시 부르시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그때부터 사무엘의 인생은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고, 그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세워졌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여전히 다가오시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많을 뿐입니다. 세상의 소음과 분주함, 마음의 염려와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자주 묻혀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고요함이 필요합니다. 사무엘이 성전에서 잠들던 그 밤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자리에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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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71 min read


한나의 기도
주님, 제 마음이 주님으로 인해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오랜 기다림과 고통 속에서도 주님께서 저를 기억하시고, 구원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제 삶의 뿔이 높아지고, 절망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구원으로 인해 제 입이 기쁨으로 열립니다. 주님과 같이 거룩하신 분은 없습니다. 주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견고한 반석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만이 진정한 보호자이십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게 하소서. 오만한 말과 잘난 체하는 태도를 멀리하게 하소서.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니, 저의 생각과 행동을 늘 살피시고 바르게 인도하여 주십시오. 주님은 강한 자의 힘을 꺾으시고,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십니다. 넉넉한 자를 부족하게 하시고, 부족한 자를 풍성하게 하십니다. 자녀를 기다리는 이에게 소망을 주시고, 삶의 무게에 지친 이에게 새 힘을 더하십니다. 죽이기도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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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61 min read


우연인가, 섭리인가
룻기는 하나님의 섭리가 언제나 큰 기적 속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작은 우연과 조용한 타이밍 속에서도 숨 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모압 여인 룻은 “이삭이나 주워 볼까” 하며 들판으로 나섰습니다. 그저 하루의 생계를 위한 발걸음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 하나님은 메시아의 족보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나오미는 마음이 무너져 “여호와께서 나를 괴롭게 하셨다”라며 탄식했지만, 그녀의 곁에 있던 며느리 룻이 우연히 만난 사람이 기업을 무를 수 있는 가까운 친족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오랜만에 하나님의 헤세드 , 그 한결같은 사랑의 온기가 스며들었습니다. 보아스가 성문에 앉아 있을 때, 마침 더 가까운 친족이 지나가고, 모든 순간이 꼭 맞은 톱니처럼 맞물렸습니다. 인간의 계산이나 계획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섭리의 시간표였습니다. 결국 그 모든 ‘우연’들이 이어져 다윗의 가문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했습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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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51 min read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
사사기 19–21장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장면 중 하나입니다. 한 레위 사람의 첩이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들에게 밤새 폭행당해 죽고, 레위인은 그녀의 시신을 열두 토막 내어 이스라엘 각 지파로 보냅니다. 충격은 곧 분노로 번졌고, 결국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거의 멸절시킬 정도로 피의 전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폭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베냐민 남자들에게 아내를 구하기 위해 또 다른 악행이 자행됩니다. 실로에서 춤추던 여인들이 납치되고, 야베스 길르앗이 공격당해 처녀들이 강제로 끌려갑니다. 성경은 이 참혹한 비극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하나님께서 왕 되심을 거부하고, 사람마다 자기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했다는 선언입니다. 그 결과는 지옥이었습니다. 정의는 사라지고, 죄와 폭력은 멈추지 않고 번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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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42 min read


왕이 없으므로!
사사기 17장 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개역개정) 짧은 한 구절이지만, 사사 시대의 혼란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미가는 하나님께 복을 받기를 원했지만, 은으로 신상과 우상을 만들어 가정 제단을 세웠습니다.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세워 하나님을 섬기는 듯 보였지만, 실상은 자기 방식대로 신앙을 조각한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경건했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무시한 혼합 신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왕이 없다”는 말은 단순히 정치적 공백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을 때, 절대적 기준이신 말씀 - 하나님의 법 - 이 사라집니다. 그 결과 사람은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세상도 비슷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도덕적, 영적 혼란 속에서 방향을 잃고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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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31 min read


사사기 9장의 비극
기드온의 서자 아비멜렉은 혈연의 끈으로 세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신전의 은 70개로 폭력배들을 고용해 형제 일흔 명을 한 바위 위에서 무참히 죽였습니다. 그러나 혈연과 재력, 힘으로 세운 왕좌는 불과 3년 만에 그 방식 그대로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는 이미 진리를 알고 새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옛 사람은 죽고, 우리는 새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입니다.그러나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옛 습관이 스며 나옵니다. 혈연과 지역으로 사람을 가르고, 돈과 권력으로 자리를 지키려 하며, 세상의 흐름을 아무런 저항 없이 따라가는 모습이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 요담의 우화가 다시 마음에 울립니다. 감람나무는 “내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데, 어찌 우쭐대리요?” 하고,무화과나무는 “내 단 열매를 버리고 어찌 왕이 되리요?” 하며, 포도나무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를 버리고 어찌 높아지리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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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201 min read


300
사사기 7장의 기드온과 300 용사의 이야기는 신앙의 깊은 골짜기를 비춰줍니다. 미디안 군대는 13만 5천 명이었습니다(삿 8:10). 하늘을 가득 메운 그 숫자 앞에서, 기드온의 3만 2천 명은 너무 작고, 너무 초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이해되지 않는 명령이었죠. 전쟁을 앞둔 병사들의 눈빛엔 이미 두려움이 스며 있었습니다. "돌아가라, 두려운 자는." 말씀 한마디에 2만 2천 명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남은 1만 명의 가슴속에선 용기와 불안이 뒤섞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다시, 물가에서 그들을 시험하십니다. 무릎 꿇고 엎드려 마신 자들은 제외되고, 경계하며 손으로 물을 떠 마신 단 300명만이 남았습니다. 이제는 300 대 13만 5천. 인간의 계산으로는 말도 안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마음 깊은 곳을 비추십니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랑하여,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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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19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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