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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기억하는 삶
신명기 15–16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나누며 사는 삶을 보여줍니다. 세 절기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감사의 삶으로 부르십니다. 유월절 은 구원의 은혜를 기념합니다.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이 ‘넘어간’ 그 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와 진노를 영원히 넘어가게 하셨습니다(고전 5:7). 성찬 때마다 주님, 나를 구원하신 그 피”를 묵상하며 감사합시다. 그리고 일상에서는 "오늘도 구원의 은혜로 삽니다” 라는 한 줄 감사로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칠칠절(오순절) 은 첫 열매를 드리며 공급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그날은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터의 성취, 자녀의 성장, 가정의 평안 모든 열매가 주님의 손길임을 기억하세요. “이것은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주일마다 이번 주의 열매를 가족이나 소그룹과 함께 나누어 보세요. 초막절 은 광야의 나그네 되었던 세월을 기억하게 합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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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ays ago1 min read


다음 세대, 우리가 기억할 때 살아난다.
“너희 자녀는 알지 못하였거니와 너희는 알았나니…” (신명기 11:2) 모세는 부모 세대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보았다.” 애굽의 열 가지 재앙. 갈라진 홍해. 광야의 만나와 반석. 고라의 반역으로 갈라진 땅….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증거였습니다. 부모 세대의 눈으로 본, 실제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이 사라질 때, 하나님은 다음 세대에게 ‘옛날 이야기’가 됩니다. 한때 누군가의 신앙이었지만, 지금은 먼 전설처럼 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으려 애씁니다. 상처, 실패, 수치, 부끄러움…. 잊는 것은 때로 치유의 시작이지요.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 구원의 은혜. 아무도 몰라줄 때 “내가 너를 안다” 하시던 위로. 인간의 힘으로는 열 수 없던 문이 열린 순간. 그리고 주님과 속삭이듯 나누던 그 깊은 교제…. 이 기억이 희미해질 때, 우리의 믿음은 과거형이 됩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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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ays ago1 min read


자꾸 잊어버리는 주님의 은혜
광야 40년은 단순한 이동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나 없이는 살 수 없다. 나를 의지해야 산다. ”배고픔에 불평할 때 만나를 주시고, 목말라 죽을 지경에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원수 앞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주시며 그분은 매일, 매 순간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다”라고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의 마음을 시험하셨습니다. 말씀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불순종할 것인가. 가나안 땅이 보이는 곳에 선 모세는 백성에게 간곡히, 거의 애원하듯 말합니다. “너희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다 얻었다’ 하지 말라”(신 8:17) “내가 의로워서, 내가 착해서 이 좋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생각하지 말라”(신 9:4~5) 그 땅은 이스라엘의 공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그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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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days ago1 min read


우리는 누군가를 닮아간다
오늘의 성경 읽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신 4:24, 5:9, 6:15). 이 질투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독점적으로 사랑하시는 언약적 열정입니다. 건강한 관계에서 서로의 충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처럼요. 맥스웰 멀츠 박사는 성형수술로 환자들의 외모를 바꿔주며 삶의 변화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새 얼굴, 새 미래”를 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를 깨달았어요. 아무리 예뻐져도 과거의 부정적인 자아상에 갇혀 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요. 결국 그는 “성격에도 얼굴이 있다”며, 진정한 변화는 내적 자아상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은 없지만,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얼굴이 우리를 향하시면 은혜와 평강이 임하고, 낡은 자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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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ays ago1 min read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 먹는 것이 싫증이 났습니다. 고기를 먹고 싶었어요. 이집트의 생선과 채소를 그리워하며 각기 장막 안에서 불평하며 울었어요. 모세는 이 소리를 듣고 괴로워했습니다.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습니까 하소연합니다. 하나님은 그 불평에 화를 내시면서도 자비로 응답하십니다. 내일이면 고기를 먹을 것이다. 한 달 동안 먹되 코에서 역겨워할 정도로… 모세의 반응은 불신이었어요. 오 천명 앞에서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로 먹이시려는 예수님 앞에 제자들의 반응과 같았어요. "육십만 장정이니 양 떼와 소 떼를 잡은 들 …. 불가능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이제 네가 내 말이 어떻게 응하는지 보게 되리라. 이어 바람을 보내 메추라기 떼를 진영 사방 하룻길 거리에 90센치미터 높이로 쌓이게 하셨어요. 수백만 명이 한 달 내내 먹을 만큼! 이는 오병이어 기적보다 더 압도적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능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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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201 min read


문화충격 그리고 얻은 것
민수기 2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여인들의 유혹에 빠져 바알브올 신을 섬겼어요. 그 예배는 쾌락과 풍요를 약속하면서 성적인 행위를 신성한 의식처럼 포장한, 사실상 신성 매춘 같은 것이었죠. 이 큰 죄 때문에 24,000명이 염병으로 죽었어요. 광야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순수한 믿음이 세상의 매력적인 문화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쉽게 넘어질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강한 경고예요. 지금 세상도 똑같이 풍요와 쾌락으로 우리를 끌어당겨요. 소셜 미디어, 연예, 소비 문화가 성적 자유와 즉각적인 만족을 ‘정상’이고 자유로운 삶처럼 포장합니다. 우리와 자녀들은 이런 문화에 얼마나 약할까요? 끝없는 자극 속에 스마트폰 화면 안에 갇혀 살아가면서 시간, 감정, 가치관을 빼앗기고, 남들과 비교하며 욕망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거기엔 진짜 자유가 없어요.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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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81 min read


변경시킬 수 없는 복
발람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과 불변하는 축복을 생생히 드러냅니다.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해 발람을 큰 보상으로 불러 저주를 청합니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며 저주하면 이들을 꺾을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저주하지 말라 그들이 복을 받은 자니라”(민 22:12). 발람은 세 번 장소를 바꾸며 시도하지만, 매번 축복의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아니하셨은즉 내가 어찌 저주하리이까”(23:8).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한 번 하신 말씀을 후회하지 아니하시느니라”(23:19).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24:9). 마지막으로 메시아를 예고하며 이스라엘의 승리를 선언합니다. 발락은 세 번 축복을 듣고도 분노하며 더 많은 돈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하나님께 복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저주에만 집착할 뿐, 축복의 근원이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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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71 min read


광야에서 훈련됨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고 만나를 먹으며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마실 물이 없어서 불평했습니다. 이 불평은 단순한 순간의 투정이 아니라, 그동안 쌓여온 불편함과 어려움, 광야의 끝없는 더위와 피로, 불확실한 미래, 가족의 고단함, 반복되는 좌절이 폭발한 결과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자 지연, 일자리 불안, 자녀 양육, 스트레스, 관계, 고립감 등 일상 속 작은 스트레스가 쌓이다가 어느 순간 폭발합니다. 모세도 그런 백성에게 화가 나서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물은 나왔지만, … 그 행위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 폭발로 끝났습니다. 결국 모세는 그 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 사건은 힘든 생활 속 우리에게 경고이자 위로입니다. 삶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사람에게 쏟아내면 영적 생명을 갉아먹습니다. 화가 날 때 즉시 행동하기보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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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61 min read


불평의 전염성을 경계하라
불평은 전염병처럼 퍼집니다. 불평에 대한 불 심판 후에도 “애굽 때가 좋았다, 생선 공짜였는데 지금은 만나뿐” 라며 울부짖습니다. 각 장막 안에서도 불평의 소리 들립니다. 모세는 지쳤습니다.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내가 이 백성의 유모입니까? 내가 이들을 낳았습니까… 고기를 먹게 해달라니, 내가 무슨 제주로…”불평의 무서운 점은 전염성입니다. 한 사람의 투덜거림이 순식간에 가족, 공동체, 심지어 리더까지 감염시킵니다. 오늘도 가정 직장 SNS에서 한마디 불평의 말이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감사와 믿음을 메마르게 합니다. 불평은 단순 말이 아니라 영적 스트레스를 만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까지 의심하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소리를 듣습니다. 모세의 하소연을 들으시고 70 장로에게 영을 나누어 짐을 덜어주시고(민 11:16-17), 백성의 고기 요구에도 응답하시되 지겹도록 먹게 하십니다. 불평하는 그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도 매일 두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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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41 min read


축복기도
여호와는 내게 복을 주시고 나를 지키시기를 원하시며,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내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며,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수기 6장) 이 축복은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주신 말씀으로, 제사장을 통해 백성에게 복과 보호, 은혜와 평강의 약속을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직접 나아갈 수 없던 구약 백성은 이 축복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신약 시대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어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시고, 중보자 없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 못 할 탄식으로 중보하시며 기도를 인도하십니다. 구약 제사장의 역할을 이제 성령님께서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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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11 min read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몇명?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하시며 권능과 능력을 나타내시던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을 전쟁하는 백성으로 세우십니다. 가나안을 향해 싸우는 조직된 군대로, 단순한 종족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전환되는 결정적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단순한 정복 전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군대를 조직하시면서도 성막을 정중앙에 두시고 모든 지파가 그분을 중심으로 진을 치게 하십니다.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성막을 지키게 하십니다. 이는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죄와의 싸움이 먼저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치르는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그러나 진짜 전쟁터는 외부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입니다. 죄의 유혹, 교만, 불신, 분노, 탐욕 등 … 우리 진영 안에서 일어나는 반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조직하시고 각자에게 은사와 직분을 주시며,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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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01 min read


최고의 복지 플랜
레위기 25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토지 규례의 핵심입니다. 매 7년째 되는 안식년에는 땅을 쉬게 하여 토양을 회복시키고, 가난한 자와 가축, 들짐승까지 함께 먹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50년째 되는 희년에는 모든 토지를 원래 가족에게 돌려주고, 히브리 노예를 해방하며, 모든 빚을 탕감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시대 초기에는 부분적으로 실천되었지만, 왕정 시대(약 490년) 동안에는 안식년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탐욕과 물질주의, 토지를 영구 소유하려는 욕심이 하나님의 규례를 무시하게 했습니다. 정치적 분열과 외세의 침략으로 남북 왕국이 갈라지면서 공동체적 실천은 더 무너졌고, 이 제도는 역사 속에서 구현되지 못한 채 이상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희년의 정신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며, 희년의 의미를 가장 깊고 완전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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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91 min read


제사 제물을 바친 이유
레위기 16장을 읽다가 문득 든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먹지도 않으시는데, 왜 동물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을까?” 제물은 하나님의 필요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지만, 하나님은 공의로우면서도 자비로우셔서 죄를 직접 치르게 하지 않으시고 대신 죽는 제물을 허락하셨습니다.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직접 칼을 들어 살아 있는 동물의 목을 베어야 했습니다. 피가 온몸에 묻고 조각내는 그 과정을 통해 ‘내 죄 때문에 이 생명이 끊어졌다’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습니다. 죄의 무게를 잊지 않게 하는 강력한 교육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불완전한 제사를 오랫동안 명령하신 이유는 모든 제물은 궁극적으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분은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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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61 min read


사랑과 보호
레위기에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보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규정들은 단순한 금지 목록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세상과 구별하시고, 건강과 공동체의 안녕을 지키시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을 명확히 구분하십니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만 먹으라 하시고, 돼지나 조개류 같은 것은 먹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고대 환경에서 독소나 기생충의 위험을 피하게 하는 지혜로운 지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십니다. 이 구별은 영적 순결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육체적 건강을 위한 사랑의 울타리입니다. 출산 후 어머니와 아기의 회복을 위한 시간을 보장하십니다. 나병과 같은 병이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지 않도록 미리 차단하십니다. 격리하여 진영 밖으로 나가 살아야 했습니다. 곰팡이 핀 옷이나 집도 검사하고 불태우라 하시니, 세균 확산을 막는 소독 원리까지 담겨 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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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41 min read


말씀대로 성막 건설
출애굽기 성막 건설 내용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반복적으로 기록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 때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금송아지는 자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만들어 하나님을 대신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막은 다릅니다. 정확한 설계대로, 지정한 재료를 가지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완전하고 철저한 순종을 보여줍니다. 성막은 단순한 천막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약속의 상징입니다. 그 건설 과정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25-31장의 설계 내용을 반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확히 이루어졌다”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특히 금송아지 사건 직후에 이런 반복이 나오는 것은 죄로 타락했던 백성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복종하며 회복되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구별된 자들과 헌신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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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301 min read


금송아지로 얻은 것은
출애굽기 32장 금송아지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영광이 송아지에게 돌려져 초월적 위엄이 축소되었습니다. 거룩함이 더럽혀졌습니다. 이름이 훼손되었습니다.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는 말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우상에게 빼앗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큰 손실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과 하나님 임재, 친밀한 동행을 잃었습니다. 언약이 흔들려 약속의 땅과 보호가 위태로워졌습니다. 순간적 안도감을 얻었으나 진정한 평안은 사라졌습니다. 레위 지파가 삼천 명을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왜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요? 모세가 보이지 않자 불안했고, 눈에 보이는 신을 원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위로받고 기뻐할 수 있는, 통제할 수 있는 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경고는 분명합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 성공, 편안함을 최우선에 둘 때, 그것이 현대판 금송아지가 됩니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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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81 min read


마음대로가 아닌 말씀대로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신 후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언약궤의 크기·재질부터 제사장의 옷, 성소 구조와 예물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직접 설계였습니다(출 25-31장).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으로 행진해야 했기에, 이동식 성막이 필요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구별된 장소이자, 백성들이 예배하며 그 임재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섬기게 내버려두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상상이나 감정에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맞는 예배만이 진정한 교제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대로 드리는 예배는 결국 인간 중심이 됩니다. 성막은 단순한 임시 거처가 아닙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듯 “하늘에 있는 것들의 그림자”이며,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막 전체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 치신”(요 1:14)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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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71 min read


매일 먹는 신선한 양식
우리는 마트에서 대량 구매해 냉장고와 냉동실을 가득 채웁니다. 편리하지만 신선함이 떨어집니다. 건강에 부담이 됩니다. 반면 프랑스 사람들은 매일 또는 이틀에 한 번 동네 시장에서 그날 먹을 만큼만 삽니다. 신선한 빵 과일 치즈 등을 당일 즐깁니다. 이 습관 덕에 프랑스는 심장병과 비만율이 미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주신 만나도 매일 아침 거두어 먹어야 했습니다. 하루치 이상 쌓아두면 벌레가 생기고 썩었습니다(출 16:20). 다만, 안식일 전날에만 두 배로 주셔도 상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을 그날 먹고 남기지 말라는 명령은 욕심과 불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훈련이었습니다. 40년 동안 이 과정을 반복하며 사람들은 여호와는 매일 공급하시는 분임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이 만나가 가리키는 궁극적 진리는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예수님은 매일 새롭게 오시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어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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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31 min read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놀랍고 황송한 초대장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10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시며,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시는 것도 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도 성경은 반복해서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말씀하시고, 행동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굳이 이렇게 하실까? 홀로 하셔도 될 일을 왜 모세의 손과 입과 무릎을 통해 … 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깊은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파트너,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 때 홍해가 갈랐고, 기도할 때 재앙이 멈췄습니다. 기적의 주체는 하나님이지만, 통로는 모세의 순종과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우리와 함께 드러내기를 기뻐하십니다. 오늘도 이 원리는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홀로 일하실 수 있지만,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기도하라고, 움직이라고, 믿음으로 한 걸음 내디디라고. … 우리가 기도하고 순종할 때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흐르고, 삶과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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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21 min read


바로를 보며 ‘나’를 보아야 합니다.
애굽의 10가지 재앙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베푸신 강력한 능력입니다. 각 재앙은 애굽 신들을 향한 심판이자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냅니다. 무신론자나 비신자들은 이를 고대 신화나 자연재해(적조, 화산 폭발, 전염병 등)로 해석하려 합니다. 그러나 재앙이 정확히 10가지로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모세의 경고와 기도로 시작·종료되는 일관된 패턴입니다. 고센 땅만 제외되는 지역적 구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장자를 구하는 표식 등은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재앙이 반복될수록 더욱 확실해지고, 바로의 힘과 교만은 점점 한계에 부딪히며 드러납니다. 그는 매번 순종을 약속하지만, 재앙이 그치면 다시 기득권을 지키려 고집합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질병·실업·관계 파탄 같은 시련 때는 하나님을 찾지만, 회복되면 옛 습관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이 원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 되풀이되는 모습이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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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1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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