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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으신 이를 향한 우리의 자세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빚음을 받은 물건이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이사야 29:15-16)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마음을 정확히 보고 계셨습니다.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계획을 세우면서도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며 스스로를 숨기려 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를 평가하려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질문들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출발점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원망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공의와 함께함을 분명히 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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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ays ago1 min read


“성벽은 쌓았는데,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둘러싼 위기의 순간, 백성들은 누구보다 부지런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고, 물을 확보하며, 무기를 점검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준비는 철저하고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분주함 속에서 결정적으로 빠진 것이 있었습니다.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다”(이사야 22:11)는 책망은 단순한 종교적 태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백성들은 성벽을 쌓았지만, 그 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물을 모았지만,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준비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이루어진 준비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래를 대비하고, 삶을 정비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득 돌아보면, 우리의 시선이 보이는 것들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손에 잡히는 것들이 마음의 안전망이 되고 하나님은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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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71 min read


그날에, 심판과 구원이 만나는 순간
이사야 17~19장을 읽다 보면 ‘그날에’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시리아가 폐허가 되고, 에티오피아가 심판받으며, 이집트가 내전과 기근으로 무너지는 날. 강대국들의 교만이 바스러지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17장에서 야곱의 영광이 시들지만, 바로 그날에 사람들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고” 우상을 버립니다. 19장에서 이집트가 약해져 떨지만, 그날에 제단이 세워지고, 이집트 사람들이 여호와를 알게 되며, 앗수르와 함께 평화의 길을 걷습니다. 하나님은 치시되 고치시고, 무너뜨리시되 세우십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그날’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균형을 잃게 만들고 하나님 없이 살려 할 때 우상이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교만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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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61 min read


높아지려는 마음, 그리고 떨어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네가 스올에 빠지리라.” (이사야 14:13-15) 살다 보면, 하나님이 정말 지금도 일하고 계신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점점 어두워지고,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일 때가 그렇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무너졌고, 유다 역시 불안한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과 포로라는 현실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고레스를 통해 길을 여실 것까지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아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보다 더 넓은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과 장면만 보지만, 하나님은 시작과 끝을 함께 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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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51 min read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만민에게 기호로 서리라.” (이사야 11:1, 10) 이 예언이 선포된 것은 다윗 왕조가 바벨론에 의해 철저히 잘려 나간 지 약 150후, 이미 끊어진 듯 보였던 다윗의 가계.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새싹이 돋는다는 선언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회복 계획을 보여줍니다. 그 예언은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 작은 마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고, 주님은 이사야의 말씀 그대로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외모나 지위가 아니라 마음을 보시며, 억눌린 자를 공의로, 가난한 자를 정의로 다스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악을 이기시고, 부활로 새 생명의 문을 여셨습니다.그분 위에 머무시는 성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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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41 min read


마음의 평안은
주전 8세기 유다는 위기가운데 있었습니다. 전쟁의 위협, 흔들리는 정치, 불안한 미래. 아하스 왕은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힘을 붙들었습니다. 그 선택은 백성에게 더 깊은 불안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뉴스를 보며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의지처를 찾는 우리의 모습도 그때와 닮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는 뜻밖의 말을 전합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다.” 상황을 바꿀 군대도, 강력한 지도자도 아닌 ‘아기’입니다. 현실을 생각하면 당장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계산을 뛰어 넘어 일하십니다. 이 아기는 단순한 위로의 상징이 아닙니다, 통치의 주체입니다.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는 말은 우리의 삶을 실제로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 인생의 방향을 내가 쥐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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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31 min read


부모가 아이에게 읽어주지 않는 성경책
유대인 가정에서는 실제로 그런 책이 있습니다. 바로 아가서입니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여주지 않고, 영적 성숙을 갖춘 후에야 읽게 했습니다. 이유는 아가서의 아름다운 시적 표현이, 자칫 육체적인 사랑으로만 잘못 이해될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아가서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순간의 느낌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깊게 하는 거룩한 힘입니다. “너는 나를 인처럼 마음에 두고 도장처럼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투기는 스올처럼 강렬하며, 불처럼 타오르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고, 홍수라도 그것을 삼키지 못한다. 사람이 집의 모든 재산을 주고 사랑을 사려 해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가서8: 6-7) 사랑은 도장처럼 마음과 삶에 새겨집니다. 쉽게 사라지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가서는 이 사랑을 ‘여호와의 불’이라고 부릅니다. 태우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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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01 min read


아가서
아가서는 성경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입니다. 겉으로 보면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깊은 속에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적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친밀한 사랑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고백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많은 물로도 끌 수 없는 그 사랑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흘러옵니다. 아가서의 장면들 가운데 특히 마음을 붙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바라보며 반복해서 고백하는 사랑의 말입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안에 흠이 없구나.” 이 고백은 단순한 외적인 칭찬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존재 전체’에 대한 선언입니다. 신랑은 신부의 눈과 머리카락, 입술과 볼, 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 어떤 부분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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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92 min read


향수 속, 한 마리 파리
“헛되고 헛되다”라는 전도서의 말씀은 처음 들으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모든 게 헛되다면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을 다시 살피라는 따뜻한 초대입니다. “작은 어리석음도 조심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10장 1절은 특히 재미있고 날카로운 표현으로 우리를 깨웁니다. “죽은 파리 한 마리가 향유 만드는 자의 기름을 악취 나게 하는 것 같이, 적은 어리석음이 지혜와 존귀를 더럽히느니라.” 값비싼 향수 한 병에 파리 한 마리만 떨어져도 그 향은 영원히 망가집니다. 음식에 파리 한 마리를 발견하면 먹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 가족 안의 존경, 직장에서의 평판이 한 번의 작은 거짓말, 순간의 감정 폭발, 계속 미루는 게으름으로 순식간에 악취를 풍길 수 있습니다. SNS에 올린 충동적인 한 마디, 동료에게 툭 던진 날카로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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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81 min read


때를 따라 아름답게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 이민자의 삶은 다양한 ‘때’의 연속입니다.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려 애쓰는 때가 있고,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는 때, 자녀를 사랑으로 키우는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경제적 어려움과 자녀 문제로 마음이 메마르는 기다림의 시간도 지나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작지만 분명한 열매를 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때도 찾아옵니다. 우리의 현실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씨를 뿌리고 정성껏 돌보아도, 예상치 못한 가뭄 같은 어려움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했음에도 기대와 다른 모습 앞에서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그 순간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며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전도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전 3:11) 우리의 한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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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71 min read


아무것도 모른다는 고백에서 시작되는 지혜
잠언 30장에서 아굴은 스스로 고백합니다. “나는 짐승만도 못하고,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거룩하신 이를 아는 지식도 없다”.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지나치게 낮아 보이는 이 고백은, 사실 신앙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만 가능한 고백입니다. 아굴은 자신의 무지를 고백한 뒤, 곧바로 하나님을 향한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는가? 누가 바람을 그 손에 모았는가? 그의 이름이 무엇인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가? 네가 아느냐? 이 질문들은 답을 요구하기보다 인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가장 본질적인 것 앞에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아굴은 그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가 시작됩니다. 그는 이어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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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62 min read


사랑의 훈계, 지쳐 있는 부모의 자리에서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 13:24). 이 말씀은 부모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부모는 훈육의 방법만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문화는 달라졌고, 사춘기 자녀의 마음은 더 복잡해졌으며, 부모 자신도 이미 지치고 힘든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잠언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대비하며, 훈계를 받는 삶이 생명의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훈계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입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갈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방치일 수 있습니다. 진짜 사랑은 때로 불편한 말을 통해서라도 바른 길로 돌이키게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부모에게 예전 방식이 그대로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디지털 세대인 자녀들은 말 한마디에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힘으로 누르는 훈육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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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31 min read


거만함을 내려놓고, 지혜를 선택하라
우리는 “내가 옳다”는 확신 속에 살아갑니다. 말은 점점 많아지고, 듣는 일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누군가의 조언이 들려올 때, 마음이 먼저 닫히는 순간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람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말씀 앞에 서면서도 어느새 “나는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자리잡습니다. 잠언은 우리에게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말합니다. “지혜로운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책망 속에서도 사랑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더 깊게 다듬어 갑니다. 그러나 거만한 마음은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결국 자신을 외로운 자리로 이끕니다. 그래서 성경은 선언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두려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크심 앞에서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의 마음은 비로소 부드러워지고, 다시 들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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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1 min read


구하라, 인정하라, 지키라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는 것을 깨달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을 것이니라” (잠 2:4-5)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쌓여가는 하루하루의 이야기입니다. 주님을 구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마음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간절함이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은을 찾듯, 감추인 보배를 찾듯이 우리는 오늘도 말씀 앞에 앉습니다.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주님은 그런 사모하는 자리에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우리의 어두운 마음에 조금씩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을 찾는 자리에서, 점점 주님을 내 삶 속에 모시는 법을 배워갑니다. “주님이 계십니다”라는 고백을 넘어, “주님께 맡깁니다”라는 고백하는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을 때에도, 내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조용히 주님께 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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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1 min read


비를 준비하시니
“주께서 구름을 일으키시고 땅에 비를 내리시며 산 위에 풀이 자라게 하시고, 짐승과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시편 147편) 주님은 이미 구름을 모으시고, 은혜의 비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비는 아무에게나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겸손히 주님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조용히 스며듭니다. 야곱의 삶을 떠올려 봅니다. 그는 평생 자신의 힘과 꾀로 앞서가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그러나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한 그 밤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의 다리는 상하게 되었고, 예전처럼 빠르게 달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도망치거나 앞서갈 수 없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만 붙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약해진 그 순간에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말의 힘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도 반기지 아니하시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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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301 min read


위기 속 진실한 고백과 간구
시편 143편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 깊이 스며듭니다. 다윗은 원수에게 쫓기며 영혼이 피폐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고백처럼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겸손한 인정에서 참된 기도가 시작됩니다. 다윗은 또 고백합니다.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나를 암흑 속에 두었나이다.” 우리 삶에도 이러한 어둠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건강의 위기, 관계의 상처, 미래에 대한 불안, 영적인 메마름으로 인해 마음이 무너지고 깊은 절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다윗은 과거를 기억합니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읊조리며 주의 손이 행하는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돌이켜보십시오. 그 기억이 마른 땅 같은 영혼에 단비가 됩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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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91 min read


눈물로 뿌리는 씨앗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 126:5–6) 우리는 보통 씨를 뿌리는 일을 희망과 기대의 행위로 생각합니다. 농부는 수확을 바라보며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의도적으로 다른 장면을 보여 줍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울며”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왜 씨를 뿌리는데 눈물이 필요할까요? 이 시편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려보내셨을 때, 그 기쁨은 마치 꿈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습니다. 황폐해진 땅, 무너진 성전, 계속되는 위협과 부족함 속에서 그들은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씨 뿌림은 단순한 농사의 행위가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선택하는 삶의 결단이었습니다. 간절함의 눈물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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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62 min read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내가 눈을 들어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부터로다.” (시편 121:1-2) 산을 보면 정말 압도되죠. 너무 크고, 높고, 한눈에 다 담을 수도 없어요. 그 산을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떠오릅니다. 산이 크면 클수록, 그 산을 만드신 하나님의 크심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가끔 그 하나님을 너무 작은 박스 안에 넣으려 합니다. 내가 원하는 모양,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만 하나님을 기대하고, 필요할 때만 불러내는 ‘지니’처럼 대할 때가 많아요. 천지를 지으시고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시는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만든 작은 상자에 어떻게 가둘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어떻게 제한하려 하겠어요. 시편 기자는 산을 보면서 바로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고백했죠. “나의 도움이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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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51 min read


주의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의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을 읽는 습관을 넘어, 삶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는 고백입니다. 시편 119편에서 다윗은 그 고백을 깊고 풍성하게 풀어냅니다. 그의 언어에는 말씀이 주는 기쁨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의 법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그것이 나의 묵상거리니이다. 그에게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생명이었습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 두는 일이며, 그 말씀은 죄를 막아주는 방패가 됩니다. 말씀은 우리의 입술도 변화시킵니다.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묵상하는 사람의 입에는 진리가 담기고, 그 진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이 됩니다. 고난의 자리에서도 말씀은 빛을 잃지 않습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말씀이 즐거움이 될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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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41 min read


고난 속에서도 드리는 찬양
우리는 보통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일이 잘 풀릴 때, 건강할 때, 마음이 평안할 때는 자연스럽게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러나 삶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 아픔과 눈물이 가득할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시편 116편의 시인은 “환난과 슬픔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사망의 두려움 속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잔을 들고” 감사하겠다고 결단합니다. 시편 118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밀쳐 넘어뜨리려는 현실 속에서도 시인은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라고 고백합니다. 여전히 고난 가운데 있지만, 그는 반복해서 노래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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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3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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