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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꾸는 자에서 해석하는 자로
요셉은 처음엔 ‘꿈꾸는 자’라는 조롱 섞인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형제들은 그의 꿈을 시기했고, 아버지조차 한 번은 책망했습니다. 형제들은 시기 질투하여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며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요셉의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감옥과 바로의 궁전에서 요셉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꿈을 해석하는 자’입니다. 요셉은 고백합니다. 꿈도, 해석도, 모두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꿈꿉니다. 원치 않는 악몽도, 의미심장한 꿈도,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은 꿈을 꿉니다. 문제는 해석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내 색안경’으로 해석합니다. 내 욕망,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내 상처, 내가 처한 환경으로 꿈을 재단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해석을 주시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이 깃든 해석, 미래를 향한 소망이 담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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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hours ago1 min read


하나님 앞에서의 삶
바로의 경호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가 된 요셉은 무엇이든지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었지만, 단 한 가지는 예외였습니다. 주인의 아내는 안 되었습니다. 이 상황은 에덴동산의 아담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마음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허락하셨지만, 딱 한 가지를 경계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그 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날마다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때, 요셉은 말합니다. 이 집에서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가지 금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악을 어찌 행하겠습니까?” 육체의 쾌락과 출세의 유혹이 눈앞에 있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도 거의 모든 것이 허락된 듯 보이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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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y ago1 min read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여전히 ‘야곱’이라 부르시며, 벧엘에서 다시 “네 이름은 이스라엘이라” 하십니다(창 35:10). 개인적 은혜의 순간과 공동체적 언약의 확정이 함께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 거룩한 나라,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새 정체성을 받았지만, 옛 이름(실패와 연약한 나)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지우지 않고 함께 갑니다. 어머니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이미 '어머니’가 되었지만, 젖 먹이고 키우는 일상이 그 정체성을 더욱 깊게 새깁니다. 때때로 “나는 거룩한 자녀가 아닌 것 같다”고 느낍니다. 삶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자신을 구별하셨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이미 거룩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분을 닮아가는 여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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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ays ago1 min read


온유한 이삭처럼
성경 속 인물들은 대부분 드라마틱합니다. 아브라함은 독자를 제물로 바쳤고, 모세는 홍해를 가르며,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다릅니다. 그의 삶은 화려한 기적이나 전투가 아니라, 반복되는 양보와 조용한 인내로 채워집니다.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의 핍박 속에서 우물을 팝니다. 첫 우물은 다툼으로 빼앗기고, 두 번째도 싸움이 일어나 피합니다. 세 번째에서야 다툼이 없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는 싸우지 않고 매번 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삭의 온유함은 약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강한 신뢰입니다. 힘으로 땅을 쟁취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다렸기에, 가뭄 속에서도 백 배 수확하고 평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이 팔복의 구약적 증인입니다. 세상은 “강한 자가 이긴다”고 하지만,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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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days ago1 min read


믿음은 듣고 아는 신뢰의 관계에서 나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마음이 멈췄을 것입니다. “네 아들 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그 순간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이 생겼습니다. 감정에 잠깐 흔들렸지만,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하나님을 떠올렸습니다. 네 씨가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 집에서 쫓겨난 이스마엘도 복을 주시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다고 하셨는데,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명령 뒤에는 분명 다른 뜻이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길을 나섰습니다. 이삭이 묻습니다. “제물은 어디 있나요?”아브라함은 흔들림 없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시리라.” (창 22:8) 어디서 이런 믿음이 생겼을까요? 믿음은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손을 들어 칼을 잡은 그 찰나, “아브라함아, 네 아들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리고 눈앞에 뿔이 수풀에 걸린 숫양이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을 ‘여호와 이레’라 이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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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71 min read


창 15장에서 하나님의 약속 두 가지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약속을 주십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리라. 그리고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겠다. 이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두 가지 놀라운 진리로 응답하십니다. 첫째, 언약의 확증입니다. 쪼갠 제물 사이로 홀로 지나가심으로 “내가 이 약속을 어기면 나 스스로 제물처럼 되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십니다. 이는 2000년 후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찢기시고 피 흘리심으로 완성된 언약을 예표 합니다. 둘째, 미래의 예언입니다. 자손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출애굽 할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십니다. 인간은 80년 인생을 계획하며 불안해하지만, 하나님은 400년, 나아가 2000년 후 십자가와 믿음의 후손들까지 한눈에 보시며 계획하십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신실함과 희생으로 성립됩니다.우리의 삶은 순간이지만, 그분의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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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51 min read


매일 성경을 읽으며 은혜를 경험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매일 성경을 읽는 것은 믿는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습관입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꾸준히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은혜를 경험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성경을 매일 읽으며 은혜를 경험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실천 팁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 읽기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은혜의 통로가 되도록 돕는 내용입니다. 성경을 매일 읽는 이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삶에 진리와 지혜를 제공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면 다음과 같은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분과 더 가까워집니다. 삶의 방향을 잡아준다 성경은 올바른 가치관과 행동 지침을 제시합니다. 영적 성장에 도움을 준다 꾸준한 말씀 묵상은 믿음이 자라도록 돕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성경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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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52 min read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세상이 시작되었고, 하늘과 땅, 별과 바다, 온갖 생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남자와 여자가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심히 좋았던 완벽한 창조였습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해도 괜찮을까? 죽지 않을까? 탐스러운 열매를 먹음으로 순종 대신에 불신과 욕망의 문을 활짝 열어 버렸습니다. 먹는 순간 눈이 밝아졌지만, 동시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숨고, 변명하고, 서로를 탓하는 첫 부부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되풀이하는 익숙한 장면입니다. 타락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자녀 가인과 아벨에게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서 올바른 자세를 찾았지만,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가인은 화를 참지 못하고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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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21 min read


주님이 주신 복
한 해 동안 성경 일독을 완주하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올해의 마지막 날, 오늘 읽는 계시록 21-23장은 예수님께서 누구인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마침이 되시는 분입니다. 시간과 역사를 초월하신 영원한 존재,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한 칭호를 사용하시며, 하늘 보좌에 함께 앉으시고, 하나의 성전이 되십니다. 하나님만 가지실 수 있는 심판의 권세와 재림의 주권을 온전히 가지신 분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내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으리라” 그런데도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초대합니다. “누구든지 와서 생명수 샘물을 마시라”(계 22:17 ) 목이 마른 사람도 오십시오. 생명의 물을 원하는 사람은 거저 받으십시오. 한 영혼을 기다리시는 주님의 넓고 긴 기다림의 마음을 봅니다. 우리도 그 마음을 본받아, 누군가를 향해 “오라”고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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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31, 20251 min read


누구나 둘 중 하나에 속해 살아갑니다.
누구나 둘 중 하나에 속해 살아갑니다. 그 선택은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로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아니한 자 곧 땅에 거하는 자들이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 13:8) 짐승에게 경배하는 자는 오른손이나 이마에 666의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 표가 없으면 아무도 사고팔 수 없게 되므로, 세상의 경제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짐승에게 충성을 바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666을 ‘미혹과 압박’의 경고로 제시할 뿐입니다. 핵심은 ‘어린양을 따르는가 vs 짐승을 따르는가’입니다. 이 숫자를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베리 칩, 디지털 ID, 백신 등을 666으로 연결하며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생각입니다. 666은 하나님의 완전수 7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적· 사탄적 숫자로, 반기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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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9, 20251 min read


회복하여 축복으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지금의 튀르키예(터키) 서부 지역에 있던 실제 교회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각 교회에 주신 칭찬과 책망, 그리고 권면은 오늘 우리 신앙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에베소처럼 열심히 봉사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어느새 예배와 기도가 형식적이고 습관적이지 않으십니까? 주님을 향한 첫사랑이 어느새 식어져 있지는 않으신지요? 버가모와 두아디라처럼 물질, 쾌락, 성적 타협 같은 세상 가치가 스며들어 있지는 않나요? 사데 교회처럼 겉으로는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속으로는 영적 생명력이 다 식어 버린 채 살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무엇보다 라오디게아의 미지근함은 오늘날 가장 위험합니다. “이 정도면 괜찮지”라는 안일함, 영적 허기를 세상 것으로 채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작고 연약해 보이는 성도와 교회일지라도 말씀을 굳게 붙들고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충성하면, 주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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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6, 20251 min read


오늘, 나의 회개가 새 출발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분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둠이 있습니다. 죄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오해합니다. 그래서 죄지을 때마다 낙심하고 하나님께서 멀어집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거한다는 말은 죄가 전혀 없는 완전한 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 완벽한 삶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죄를 더 이상 숨기지 않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그 죄를 가지고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 약속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죄를 지어도 계속 용서받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죄를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어둠에 머무르는 사람은 죄를 덮고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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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3, 20251 min read


시간의 틀에 갇힌 우리
오래전, 시계가 없던 시대 사람들은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살았습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 농사를 짓고, 해가 지면 쉬며 잠들었습니다. 약속은 “오전 중”이나 “저녁 무렵”으로 느슨했고, 기다림은 삶의 일부였습니다. 시간은 여유로웠습니다. 그러나 18-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회중시계와 벽시계가 보급되면서 달라졌습니다. 시간은 정확한 숫자로 측정되었고, 사람들은 스케줄에 매여 기계처럼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1분 지연도 스트레스가 되고, 기다림의 여유를 잃었습니다. 독일 철학자 한병철은 현대인을 “죽기에는 너무 살아 있고, 살기에는 너무 죽어 있다”고 표현합니다. 과도한 성과 추구 속에서 바쁘게 활동하지만, 영혼은 소진되어 진짜 살아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좀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시간의 틀에 갇히지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8-9은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며, 주님의 약속이 더디다고 여겨지는 것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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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2, 20251 min read


성경이 존재하는 이유
요리책이나 골프책 보면 참 재미있죠? 이런 책들은 그냥 읽고 덮는 게 아니라, 우리 삶에 쏙 들어와서 실제로 뭔가를 바꿔주는 실용서예요. 요리책 보면서 맛있는 음식 해먹고, 골프책 따라 하다 보면 스윙이 점점 좋아지듯이요. 성경도 딱 그래요!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책이에요. 그것도 충분하고, 확실하게요.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구원받았잖아요(Already). 그런데 아직 이 땅에 살고 있어서, 죽음 이후에야 완전한 천국에 들어가니까 “구원에 이르는 지혜”라는 표현으로 그 과정(Not Yet)을 보여주는 거예요. 성경은 이미 받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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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5, 20251 min read


어디에 살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골로새서 2장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모든 권세 위에 계신 분입니다.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머리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첫 열매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승리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린 완전한 구원입니다. 죄의 몸을 벗기는 영적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는 죽고, 부활의 권능으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주 안에서 사는 특권을 누립니다. 그러므로 “철학, 헛된 속임수, 인간의 전통, 세상의 초등학문”에 흔들릴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신 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삽니다. 지금 내 기쁨은 어디서 오는가? 무엇이 나를 주장하고 있는가? 하루의 수많은 시간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삶은 점점 사라지고, 스마트폰 “알고리즘”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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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0, 20251 min read


영적 독서와 읽는 기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이감정만이 아니라 진리를 깊이 알고, 영적으로 예민하게 분별하는 사랑으로 날로 더 풍성하게 자라게 하소서. 그들로 하여금 가장 소중한 것을 선택하게 하시고, 동기가 순수하며, 다른 이들을 실족시키지 않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들의 삶 전체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만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소서! 감정에 치우친 사랑은 위험합니다. 사랑은 결코 진리를 벗어나거나 맹목적이어서도 안 됩니다.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바르게 적용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으려면 지식과 총명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길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들의 기도 생활도 이처럼 깊고 풍성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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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9, 20251 min read


빌립보서를 가지고 기도하기
천천히 한 문장씩 읽으며 기도하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밤에 눈을 감기 전에 소리 내어 천천히 한 문장씩 기도해 보세요. 1. 선한 일의 완성 주님, 저 안에 시작하신 선한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끝내 주십시오 제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날마다 더 풍성해지게 하여 주십시오 제 삶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소서 성령님, 지금 이 순간도 저를 위해 간구하시고 도우소서 제가 아무일에도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제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며 죽는 것도 유익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2. 복음에 합당한 삶 복음에 합당하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하소서 모든 일에 교만과 다툼을 멀리하고 겸손한 마음을 주십시오 예수님의 마음을 제 마음 깊이 품게 하소서 죽기까지 낮아지신 주님의 사랑에 제 영혼이 녹아내리기를 원합니다 제 안에 소원도 행함도 오직 주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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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8, 20252 min read


나 자신을 알자!
오늘의 묵상은 에베소서 2장입니다. “너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때에…”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제 과거가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다녔지만, 제 영혼은 죽어 있었습니다. 세상 흐름에 몸을 맡기고 순간의 쾌락만 쫓았습니다. 나름 착하게 살려 했지만, 주님 보시기엔 여전히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자격 없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죄를 예수님께 옮기시고 저를 살리셨습니다.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 이름을 불러 주셨을 때, 저는 비로소 꽃이 되었습니다. 그의 손끝에서 새롭게 빚어진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죄가 보이고 옳고 그름이 분별 되었습니다. 세상이 아닌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이 제 안에 계신 것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이 경험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오늘 두 가지를 마음에 새깁시다. 첫째, 내가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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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8, 20251 min read


사랑 사랑 사랑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 장”이라 불립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믿으며 바라며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니… ‘오래 참음’은 감정이 터지려는 순간에도 끝까지 품는 능동적인 태도입니다. ‘견딤’은 공격 속에서도 대형을 흩뜨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군인의 자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오래 참을 수 없습니다. 집에서 아이가, 배우자가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 직장에서 동료가 또 같은 실수와 말로 나를 건드릴 때,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가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오래 참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나를 기다리시고 참아 주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희생이야말로 오래 참음의 완전한 열매입니다. 주님이 나를 품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품읍시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랑하십시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지만,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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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3, 20251 min read


절제와 훈련
현대 사회는 모든 면에서 경쟁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영적 여정으로 봅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바울은 신앙생활을 경기장의 달음질에 비유합니다. 영원한 상을 위한 절제와 훈련을 강조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위하여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위하여 하나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칫하면 탈락자가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내 몸'은 생각, 감정, 욕망을 포함합니다. 선수들이 일시적 영광을 위해 절제하듯,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상을 위해 훈련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을 거울로 제시합니다. 그들은 구원받았고,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우상숭배, 간음, 불신, 원망 불평으로 멸망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는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가정, 직장,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 몸을 굴복시키고 통제해야 합니다. 내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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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 2025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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