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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복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우리의 마음을 잔잔히 두드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눈에 보이는 형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시작됩니다. 시편 1편은 우리에게 한 사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과 깊이 연결된, 한 그루 나무 같은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은 먼저, 멈출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악인의 조언이 스며들기 전에, 죄인의 길이 익숙해지기 전에,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기 전에 ~ 그는 한 걸음 물러섭니다. 죄는 늘 조용히 다가와 우리를 머물게 하고, 결국 앉게 만듭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영혼은 그 흐름을 알아차리고, 다시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는 채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마음에 새깁니다. 말씀은 단지 읽혀지는 글이 아니라, 하루의 숨결이 되고 생각의 결이 됩니다. 기쁨으로 품은 말씀은 우리의 내면을 적시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의 삶은 한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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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y ago1 min read


폭풍 속에서 만난 하나님
주여, 왜입니까? 우리는 인생의 고난 앞에서 이 질문을 반복합니다. 설명되지 않는 아픔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욥 역시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이 고난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의 원인이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네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어디 있었느냐? 바다의 문을 누가 두었느냐? 하나님은 설명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 앞에서 욥은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5) 듣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아는 하나님에서, 만나는 하나님으로.... 그 순간, 고난의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 자체가 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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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ays ago1 min read


말 한 마리의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전쟁 한복판에서도 말은 멈추지 않습니다. 칼과 창이 번뜩이고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운 그곳에서도, 말은 땅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나팔 소리가 울리면 오히려 더 힘차게 달려듭니다. 두려움보다 더 큰 무엇이 그를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물으십니다.“네가 말에게 힘을 주었느냐? 그의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입혔느냐?” (욥 39:19)이어지는 질문들은 더욱 깊어집니다. 새벽에게 그 자리를 명령하였느냐, 바다의 근원을 걸어보았느냐, 별들의 질서를 이끌어 보았느냐…하나님은 욥의 ‘왜’에 직접 답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창조의 신비와 거대한 질서를 보여주시며, “네가 아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 질문 앞에 우리는 조용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고난 속에서 우리는 쉽게 묻습니다. “왜 나입니까? 언제 끝납니까?” 그러나 욥기 36장에서 엘리후가 말한 대로, 하나님은 크시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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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ays ago2 min read


“고통 앞에서 우리가 조용히 배워야 할 것”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유를 묻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누가 잘못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돌아보며, 그 원인을 붙잡고 싶어집니다. 욥 또한 자신의 삶을 깊이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결백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욥의 친구들 말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려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고, 삶을 해석하려 애쓰지만 그 긴 시간 끝에 남은 것은 상한 마음과 멀어진 관계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지혜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 있는 한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설명이나 해답이 아니라, 그저 곁에 머물러 주는 따뜻한 마음일지 모릅니다. “왜 그랬을까”를 묻기보다 함께 공감하고 아파하는 시간, 바로 그 자리에, 조용한 지혜가 머뭅니다. 말이 옳다고 해서, 언제나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자리에는 분석하는 말보다도, 깊이 이해하려는 침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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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ays ago1 min read


보이지 않는 지혜, 보이는 순종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욥기 28:28) 살다 보면 마음 한켠에 조용히 올라오는 질문이 있습니다.“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길일까?” 현실은 때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정직하게 살려 애쓰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고, 오히려 악한 방법을 택한 이들이 더 쉽게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묻게 됩니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욥기 28장은 바로 그 질문 속에서 빛나는 말씀입니다.사람은 땅속 깊이 들어가 금과 은과 보석을 찾아낼 수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지혜’는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혜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랍도록 단순한 길을 보여주십니다.“나를 경외하라. 악을 떠나라.” 하지만 이 말씀은 지금 우리의 눈으로는 쉽게 증명되지 않습니다.공의는 더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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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days ago2 min read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짖다
“내 영혼이 내 삶을 싫어하나이다. 내 괴로움을 다 토로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말하리이다.” (욥기 10:1) 이 고백이 낯설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려 애쓰지만, 어느 순간 삶이 견디기 어려운 짐처럼 내려앉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려 눈을 감으면, 경건한 말보다 설명할 수 없는 아픔과 서러움이 먼저 밀려옵니다. 욥은 하나님을 깊이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빚으신 손길과 숨결처럼 지켜주신 은혜를 고백하던 그가, 같은 입으로 외칩니다. “그런데 왜 지금 저를 무너뜨리십니까?” 찬양과 원망이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이 모순된 고백. 어쩌면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가장 솔직한 내면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더 혼란스럽습니다. 사랑을 알기에 더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때로 위로가 아니라 깊은 갈등이 됩니다. 그럼에도 욥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납득하지 못해도, 마음이 무너져도, 끝내 하나님을 향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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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91 min read


빈 손으로 주님을 찬양하라!
하나님께서 욥을 자랑하셨을 때, 사탄은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복 때문입니다. 그 복을 거두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도전을 허락하셨습니다. 순식간에 욥은 모든 재산과 열 자녀를 잃었습니다. 그의 몸에는 악성 종기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맨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맨몸으로 그리로 돌아가리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 (욥기 1:21) 우리는 과연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까요? 직장을 잃을 때, 가정이 흔들릴 때, 건강을 잃을 때에도… 대부분의 우리는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러십니까?”라고 묻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욥과 같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욥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제게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주님은 여전히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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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81 min read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서 7장. 왕 다음가는 권세를 누리던 하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습니다. 자신이 세운 형틀에 자신이 매달려 죽는 장면은 우리에게 강한 충격을 줍니다. 그는 유다 민족 전체를 몰살시킬 조서까지 내릴 만큼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자신의 죽음이 그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만이 아직 왕에게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에스더 7:9). 이 한 구절!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인간의 계획은 얼마나 허망한가. 잘나갈 때, 마음껏 펼쳐나갈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하만처럼 교만해집니다. ‘내가 이 정도면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 4:14). 하만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깨닫습니다. 권력과 힘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우리의 마음 자세가 크게 달라집니다. 힘 있을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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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71 min read


내가 안다!
에스더 6장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얼마나 세심하게 기억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잠 못 이루던 왕의 밤, 조용히 펼쳐진 기록 속에서 오래전 잊힌 줄 알았던 모르드개의 충성이 다시 빛을 발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작은 순종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헌신과 더딘 응답 속에서 마음이 지칠 때,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으시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의 믿음까지도 귀히 여기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침묵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는 이미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이야기처럼 숨겨진 충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때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며, 때로는 우리를 힘들게 하던 상황조차 은혜의 도구로 바뀝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시선은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으며, “내가 너를 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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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61 min read


느헤미야의 눈물, 기도의 터닝포인트
우리는 때로 평안한 일상 속에서 모든 것이 괜찮다고 느끼며 살아갑니다. 느헤미야도 그랬습니다. 그는 바벨론 포로의 후손이었고,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술 관원으로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부족함 없어 보이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제 하나니를 통해 들려온 소식이 그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느 1:3). 이 한 문장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여러 날 슬퍼하며 금식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고향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끌어안는 이 모습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하나님의 마음에 닿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거룩한 반응이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와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예상하지 못한 소식이 마음을 무너뜨릴 때가 있습니다. 건강의 위기, 자녀를 향한 염려, 관계의 아픔과 같은 문제들이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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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21 min read


삶의 위기 앞에서
에스라 8장 21–23절에는 짧지만 깊은 믿음의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위험한 여정을 앞두자, 현실적인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군대를 요청하면 훨씬 안전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멈춰 서서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어쩌면 이 장면이 우리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건강, 재정, 자녀 문제 앞에서기도만으로 버티기에는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러 방법을 함께 찾게 됩니다.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조용히 묻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먼저 찾고 있습니까?” 완벽한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중에도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마음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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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11 min read


쉽게 가는 길에서 거룩함을 선택하는 용기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리라. 우리도 너희 하나님을 구하는 자니…”(에스라 4:2) 처음 들으면 나쁘지 않은 제안처럼 보입니다. 함께하면 더 빠르고 수월하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갈등 없이 서로 좋게 가는 길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에스라 시대의 백성들은 이 제안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왜 였을까요?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거룩함이 무너지면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을 향한 순수함이 흐려지면, 어떤 외형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 선택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공사는 오랜 시간 중단되었고, 방해와 모함이 계속되었습니다. 타협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일어나 성전은 완공됩니다(6:15). 만약 그들이 타협했다면 성전은 더 빨리 지어졌을지 모르지만,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거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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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 min read


기쁨과 눈물이 함께한 성전의 기초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먼저 제단을 쌓고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포로 귀환 2년째 둘째 달, 드디어 성전의 기초를 놓는 날이 이르렀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다윗 왕 때의 규례를 따라 제금과 수금과 나팔을 울리며 찬양했습니다.“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도다!” 그날 예루살렘은 큰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젊은 세대는 기쁨에 넘쳐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오랜 포로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하나님의 집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을 직접 보았던 나이 든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 기초를 바라보며 크게 통곡했습니다. 지금 놓인 기초는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화려하고 웅장했던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그들의 마음에는 감사와 함께 깊은 아쉬움과 상처가 함께 자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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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91 min read


요시야의 신앙, 오늘 우리에게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었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은 16세부터였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나라 곳곳의 우상을 과감히 제거하기 시작했어요. 우리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마음 깊이 하나님을 찾고 계신가요? 요즘 우리를 사로잡기 쉬운 우상들은 돈, 성공, 쾌락, SNS,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나 중심의 생각들입니다. 이 작은 우상들이 마음을 조금씩 잠식하지 않도록, 우리도 조용히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성전 수리 중 율법책을 발견한 순간입니다. 요시야는 그 말씀을 듣자마자 옷을 찢으며 회개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듣고 → 회개하고 → 실행하는” 이 흐름이야말로 살아 있는 신앙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이 움직일 때, 그것을 삶으로 옮기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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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82 min read


누구의 하나님, 이제는 나의 하나님
여호야다는 유다 역사에서 가장 담대한 멘토였습니다. 왕가가 끊길 위기 속에서 어린 요아스를 숨겼습니다. 그리고 끝내 그를 왕으로 세워 하나님 앞에 서도록 이끌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요아스는 성전을 수리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요아스는 사람들의 아첨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경건해 보였던 삶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자신을 살리고 세운 은혜조차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분명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 때문에 믿고 있는가? 누군가 곁에 있을 때만 유지되는 믿음은 진짜가 아닙니다. 나를 붙들어 주던 부모와 멘토가 사라지면 함께 무너지는 신앙,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기대어 선 믿음입니다. 내 믿음은 무엇 위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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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51 min read


믿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복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역대하 18장을 읽다 보면 두 왕의 모습이 강하게 대비됩니다.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전쟁을 앞두고 400명의 예언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왕이 듣기 좋은 말만 했습니다. “올라가십시오. 주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합은 그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이미 자기 마음에 든 결정을 내린 뒤였고, 그 결정을 뒷받침해 줄 말만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달랐습니다. 그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전할 선지자가 없습니까?”(역대하 18:6)그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미가야 선지자가 불려왔고, 그는 왕에게 불리한 예언을 전했습니다. “왕이 올라가시면 패망할 것이요.” 그 말은 아합에게는 미움과 핍박을, 여호사밧에게는 성찰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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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42 min read


아사 왕의 한순간, 우리의 오늘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살피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이다.” (역대하 16:9) 아사 왕은 참으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된 후 35년 동안 한결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상을 제거했고, 에디오피아의 백만 대군도 기도로 물리쳤습니다. 성경은 그를 “한평생”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한 왕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아사 왕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쳐들어왔을 때,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시리아 왕에게 돈을 주고 도움을 구했습니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선지자 하나니의 책망이 그를 향해 날아옵니다. “네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아람 왕을 의지하였도다.” 이때 아사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다면, 그의 마지막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했습니다. 서운함과 억울함이 마음에 가득 찼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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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32 min read


솔로몬의 지혜, 그리고 그 변질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는 기브온에서 자신을 “작은 아이”라 고백하며 백성을 바르게 재판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열왕기상 3:7-9). 하나님은 그 겸손을 기뻐하셔서 지혜뿐 아니라 부와 명예까지 더하여 주셨습니다. 처음의 솔로몬은 하나님을 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건축하며 예배의 중심을 세웠고, 그의 지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많은 은금과 권세, 그리고 수많은 아내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길을 하나씩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신명기 17장). 하나님을 위해 주어진 지혜가 점점 자신을 위한 도구로 바뀌어 갔습니다. 성경은 그를 이렇게 평가합니다.“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였다”(열왕기상 11:6). 이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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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21 min read


성전의 불, 우리 마음의 불
성전이 완공된 그 감격스러운 날, 솔로몬 왕은 떨리는 음성으로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성전을 복의 집으로 삼아 주시고, 주의 백성이 어디서든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그 죄를 사하시고, 들으시며 응답하여 주소서.” 기도가 끝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을 순식간에 태웠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고, 온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도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성전을 거룩히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도 들려오는 핵심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내 백성이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구하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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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11 min read


하나님의 설계
다윗은 생의 마지막 순간, 아들 솔로몬을 불러 마지막 부탁을 남깁니다. “너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간절히 찾으라. 힘을 내고 담대하여 성전을 완성하라.” (대상 28:20) 그는 성전을 짓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금과 은, 철과 나무, 보석에 이르기까지 성전을 위한 모든 것을 차곡차곡 준비했습니다. 마치 자신이 직접 지을 것처럼, 하나하나 세밀하게 마음에 그려가며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더 깊은 비밀이 있습니다. “이 모든 설계는 주님께서 친히 손으로 써서 나에게 알려 주셨다.” (28:19) 성전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시작된 계획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성막의 설계를 받았듯, 다윗 또한 하나님의 손길로 주어진 청사진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세우는 교회, 우리가 섬기는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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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82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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