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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니라”(시 111:10)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경험과 성취를 지혜의 기준으로 삼으며 살아갑니다. “내가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은 어느새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참된 지혜는 나에게서 시작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경외함이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고,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태도입니다. 이 마음이 자리 잡을 때, 우리의 삶에는 비로소 참된 분별과 방향이 열립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삶에는 분명한 열매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고, 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깨닫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삶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예배로 향하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지혜는 결국 자신을 중심에 둡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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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21 min read


인생을 카운트하는 지혜
아들과 함께 피클볼을 할 때마다 저는 아들에게 점수를 세라고 말합니다. 점수를 매기기 시작하면 집중력이 달라지고, 어디에 서야 할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 번의 실수도 가볍게 넘기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점수를 매기지 않으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 하며 마음이 느슨해집니다. 몸은 움직이지만 집중력은 흐려집니다. 이 모습은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 있습니다.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인생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에 한 가지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지 못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종종 말합니다.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나중에 더 잘 섬기면 되지…”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는 지나가고, 그 하루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날을 센다는 것은 단순한 계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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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91 min read


입을 크게 벌리라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채우리라.” (시편 81:10)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신 분이셨습니다.두려움과 억압에서 해방시키신 구원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네 입을 크게 벌려라. 내가 채우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은혜로 채우시려는 하나님의 초대였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그대로 두셨고, 그들은 자기 길로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입을 벌리는 대신, 다른 것들로 마음을 채우려 합니다. 끝없는 비교, 인정에 대한 갈망, 성공과 쾌락을 좇지만그럴수록 마음의 허기는 더 깊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열심히 살았지만 공허합니다.”“이루었지만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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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81 min read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발자취
굿모닝, 잘 주무셨습니까? 깊은 밤,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잠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올려도 닿지 않는 것 같고, 오히려 더 짙은 침묵만 가슴에 내려앉습니다. 시편 기자도 그런 밤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때, 그는 지난 날을 기억합니다. “내가 주의 옛적 일을 기억하며” 바다가 갈라지던 순간, 두려움 속에서도 길이 열리던 그날, 보이지 않는 손이 분명히 역사하셨던 시간들을 하나씩, 조용히 떠올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발자취를 알지 못하였나이다(19절). 하나님은 분명 지나가셨지만 그 발자취는 남지 않아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어떤 밤을 지나고 계신가요? 기도가 메마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침묵만 길어지는 그 밤에 조용히 기억해 보십시오. 나의 가장 어두운 순간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건져내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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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71 min read


하나님의 선하심을 다시 붙잡다
시편 73편은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시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하지만, 정작 그 고백을 가장 먼저 흔든 사람은 시편 기자 본인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님 없이도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고, 평안해 보일 때면 마음 한구석에 조용한 의문이 피어오릅니다. 자신은 매일 징계를 받는 듯하고, 정결하게 살려고 애썼던 모든 시간이 헛된 것처럼 느껴질 때, 마음이 서서히 미끄러져 갑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이 구절 앞에서 오래 머뭅니다. 결국 답은 ‘이해’가 아니라 ‘자리’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자리, 말씀 앞에 조용히 앉는 그 시간, 아무 말없이 주님을 바라보는 그 순간. 그 자리에 들어가서야 그는 비로소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던 형통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끝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흔들림이 아니라 영원의 방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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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61 min read


주님의 뜰에 머무는 복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님의 뜰에 머물게 하신 그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시편 65:4) 우리는 흔히 복을 물질이나 형통에서 찾지만, 시편 기자는 전혀 다른 복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아 그분의 곁에 머무는 삶, 그것이 참된 복이라는 고백입니다. 주님의 뜰에 머문다는 것은 단순한 출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을 누립니다. 죄 사함으로 양심이 자유케 됩니다. 말씀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합니다. 예배 가운데 기쁨을 회복합니다. 또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위로를 경험하며, 우리의 필요와 미래까지도 주께서 채우신다는 확신 속에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그 뜰을 떠나 세상에서 만족을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메말라 갑니다. 참된 풍요는 하나님 가까이에 머무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 다시 주님의 뜰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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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51 min read


빛과 진리를 보내소서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소서.” (시 43:3)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원수들의 조롱과 마음 깊은 곳의 어둠이 그의 영혼을 짓눌렀습니다. 스스로는 길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달은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빛과 진리를 보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빛은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며, 진리는 흔들리지 않는 반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개념이 아닙니다. 빛과 진리는 우리에게 오신 한 인격,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세례 요한이 “나는 그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하여 증언하는 자”라고 고백했듯이, 시편 기자의 이 기도는 결국 메시아를 향한 갈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또한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삶의 혼란과 두려움, 내면의 어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듯한 느낌이 우리를 흔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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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21 min read


주님을 바라보는 행복한 하루
시편 37편을 묵상하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더 잘되는 것 같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듯한 장면을 마주할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그러나 시편 37편에서 다윗은 우리의 시선을 다시 잡아줍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번영은 풀과 같아서 잠시 푸르다가 이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형통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멈추어 우리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다른 사람의 형통을 보며 조용히 비교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급함과 분노로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보려는 조바심은 결국 우리를 지치게 할 뿐입니다. 다윗은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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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11 min read


주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라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시편 32:11) 새번역은 “의인들아, 너희는 주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라고 번역합니다. 다윗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은 후, 이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그의 기쁨은 외적인 자극에서 나온 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 자체에서 솟아난 깊은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세상은 예측할 수 없이 변합니다. 그래서 생각할수록 염려와 두려움이 커집니다. 반면 하나님은 “나는 여호와라 변하지 아니하노라”(말 3:6)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동일하십니다(히 13:8). 변화하는 것을 생각하면 불안이 커지지만, 변함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하면 기쁨이 솟아납니다. 용서하시는 사랑, 인자하심으로 둘러싸시는 보호, 죄인을 의인으로 보시는 은혜, 영원한 신실하심. 이 생각이 쌓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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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01 min read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삶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내가 구하리니 곧 내가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 성전에서 그를 경배하는 그것이라”(시 27:4). 다윗의 이 고백은 분주한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멈추게 합니다. 많은 것을 바라고 구하며 살아가지만, 그의 마음은 오직 한 가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삶. 그 단순하고도 깊은 소원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잔잔히 스며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멀리 있는 분처럼 느끼며 살아갑니다. 더 열심히 해야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더 거룩해져야 가까이 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친히 성전이 되시고,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주심으로 그 거리를 허무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집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곳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머물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문득 깨닫게 됩니다. 분주한 일상 한가운데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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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92 min read


하나님의 빛과 힘으로
다윗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쫓기며 생명의 위기를 지나야 했습니다. 그런 그가 드린 시편 18편은 연약함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내가 주를 의뢰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강함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비추신 빛으로 두려움을 넘어섰고, 보이지 않던 길을 발견했으며, 넘을 수 없던 담을 뛰어넘었습니다. 그의 용기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하나님은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라 그의 훈련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힘을 주시고 길을 온전하게 하시며, 싸울 수 있는 능력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의 온유하심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온유하심이 자신을 세웠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혹시 여전히 어둠 속에 서 있지는 않습니까?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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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81 min read


복 있는 사람
“복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우리의 마음을 잔잔히 두드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눈에 보이는 형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시작됩니다. 시편 1편은 우리에게 한 사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과 깊이 연결된, 한 그루 나무 같은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은 먼저, 멈출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악인의 조언이 스며들기 전에, 죄인의 길이 익숙해지기 전에,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기 전에 ~ 그는 한 걸음 물러섭니다. 죄는 늘 조용히 다가와 우리를 머물게 하고, 결국 앉게 만듭니다. 그러나 깨어 있는 영혼은 그 흐름을 알아차리고, 다시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돌립니다. 그리고 그는 채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마음에 새깁니다. 말씀은 단지 읽혀지는 글이 아니라, 하루의 숨결이 되고 생각의 결이 됩니다. 기쁨으로 품은 말씀은 우리의 내면을 적시고,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의 삶은 한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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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51 min read


폭풍 속에서 만난 하나님
주여, 왜입니까? 우리는 인생의 고난 앞에서 이 질문을 반복합니다. 설명되지 않는 아픔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욥 역시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이 고난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의 원인이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네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어디 있었느냐? 바다의 문을 누가 두었느냐? 하나님은 설명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 앞에서 욥은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5) 듣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아는 하나님에서, 만나는 하나님으로.... 그 순간, 고난의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 자체가 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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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41 min read


말 한 마리의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전쟁 한복판에서도 말은 멈추지 않습니다. 칼과 창이 번뜩이고 죽음의 기운이 짙게 드리운 그곳에서도, 말은 땅을 박차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나팔 소리가 울리면 오히려 더 힘차게 달려듭니다. 두려움보다 더 큰 무엇이 그를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서 욥에게 물으십니다.“네가 말에게 힘을 주었느냐? 그의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입혔느냐?” (욥 39:19)이어지는 질문들은 더욱 깊어집니다. 새벽에게 그 자리를 명령하였느냐, 바다의 근원을 걸어보았느냐, 별들의 질서를 이끌어 보았느냐…하나님은 욥의 ‘왜’에 직접 답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창조의 신비와 거대한 질서를 보여주시며, “네가 아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 질문 앞에 우리는 조용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고난 속에서 우리는 쉽게 묻습니다. “왜 나입니까? 언제 끝납니까?” 그러나 욥기 36장에서 엘리후가 말한 대로, 하나님은 크시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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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32 min read


“고통 앞에서 우리가 조용히 배워야 할 것”
고통이 찾아올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유를 묻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누가 잘못했는지, 무엇이 부족했는지 돌아보며, 그 원인을 붙잡고 싶어집니다. 욥 또한 자신의 삶을 깊이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결백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욥의 친구들 말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으로 옳고 그름을 가리려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말하고, 삶을 해석하려 애쓰지만 그 긴 시간 끝에 남은 것은 상한 마음과 멀어진 관계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지혜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통 속에 있는 한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설명이나 해답이 아니라, 그저 곁에 머물러 주는 따뜻한 마음일지 모릅니다. “왜 그랬을까”를 묻기보다 함께 공감하고 아파하는 시간, 바로 그 자리에, 조용한 지혜가 머뭅니다. 말이 옳다고 해서, 언제나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자리에는 분석하는 말보다도, 깊이 이해하려는 침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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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21 min read


보이지 않는 지혜, 보이는 순종
“또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욥기 28:28) 살다 보면 마음 한켠에 조용히 올라오는 질문이 있습니다.“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길일까?” 현실은 때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정직하게 살려 애쓰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고, 오히려 악한 방법을 택한 이들이 더 쉽게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묻게 됩니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욥기 28장은 바로 그 질문 속에서 빛나는 말씀입니다.사람은 땅속 깊이 들어가 금과 은과 보석을 찾아낼 수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지혜’는 자신의 힘으로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혜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랍도록 단순한 길을 보여주십니다.“나를 경외하라. 악을 떠나라.” 하지만 이 말씀은 지금 우리의 눈으로는 쉽게 증명되지 않습니다.공의는 더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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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12 min read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짖다
“내 영혼이 내 삶을 싫어하나이다. 내 괴로움을 다 토로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말하리이다.” (욥기 10:1) 이 고백이 낯설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려 애쓰지만, 어느 순간 삶이 견디기 어려운 짐처럼 내려앉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려 눈을 감으면, 경건한 말보다 설명할 수 없는 아픔과 서러움이 먼저 밀려옵니다. 욥은 하나님을 깊이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빚으신 손길과 숨결처럼 지켜주신 은혜를 고백하던 그가, 같은 입으로 외칩니다. “그런데 왜 지금 저를 무너뜨리십니까?” 찬양과 원망이 한 사람 안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이 모순된 고백. 어쩌면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가장 솔직한 내면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더 혼란스럽습니다. 사랑을 알기에 더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때로 위로가 아니라 깊은 갈등이 됩니다. 그럼에도 욥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납득하지 못해도, 마음이 무너져도, 끝내 하나님을 향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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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91 min read


빈 손으로 주님을 찬양하라!
하나님께서 욥을 자랑하셨을 때, 사탄은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복 때문입니다. 그 복을 거두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도전을 허락하셨습니다. 순식간에 욥은 모든 재산과 열 자녀를 잃었습니다. 그의 몸에는 악성 종기가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맨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맨몸으로 그리로 돌아가리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라.” (욥기 1:21) 우리는 과연 이렇게 고백할 수 있을까요? 직장을 잃을 때, 가정이 흔들릴 때, 건강을 잃을 때에도… 대부분의 우리는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러십니까?”라고 묻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욥과 같은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욥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제게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주님은 여전히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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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81 min read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서 7장. 왕 다음가는 권세를 누리던 하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습니다. 자신이 세운 형틀에 자신이 매달려 죽는 장면은 우리에게 강한 충격을 줍니다. 그는 유다 민족 전체를 몰살시킬 조서까지 내릴 만큼 막강한 힘을 가졌지만, 자신의 죽음이 그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하만이 아직 왕에게 말하기를 마치기도 전에…”(에스더 7:9). 이 한 구절!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인간의 계획은 얼마나 허망한가. 잘나갈 때, 마음껏 펼쳐나갈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하만처럼 교만해집니다. ‘내가 이 정도면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 4:14). 하만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깨닫습니다. 권력과 힘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우리의 마음 자세가 크게 달라집니다. 힘 있을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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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71 min read


내가 안다!
에스더 6장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얼마나 세심하게 기억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잠 못 이루던 왕의 밤, 조용히 펼쳐진 기록 속에서 오래전 잊힌 줄 알았던 모르드개의 충성이 다시 빛을 발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 작은 순종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 구원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헌신과 더딘 응답 속에서 마음이 지칠 때,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으시고,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의 믿음까지도 귀히 여기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침묵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는 이미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이야기처럼 숨겨진 충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때에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며, 때로는 우리를 힘들게 하던 상황조차 은혜의 도구로 바뀝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시선은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으며, “내가 너를 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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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6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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