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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에서 만난 하나님

  • 2 days ago
  • 1 min read

주여, 왜입니까?

우리는 인생의 고난 앞에서 이 질문을 반복합니다. 설명되지 않는 아픔과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욥 역시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물었습니다. “이 고난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나타나셨을 때,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으로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의 원인이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질문하십니다. 네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어디 있었느냐? 바다의 문을 누가 두었느냐?

 

하나님은 설명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 앞에서 욥은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5) 듣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아는 하나님에서, 만나는 하나님으로....

 

그 순간, 고난의 이유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 자체가 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설명이 아니라, 자신을 주십니다. 우리는 답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설명이 없어도 우리를 잠잠하게 합니다.

 

혹시 지금 고난 가운데서 왜 라고 묻고 계십니까? 이렇게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 이유를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주님을 만나게 하소서. 듣기만 하던 제가, 이제 눈으로 주를 보게 하소서.”

 

 

 

묵상을 위한 질문

1.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의 ‘답’을 구하기보다,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기도로 바꾼다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2. 나는 하나님을 ‘듣는’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삶 속에서 실제로 ‘만나고’ 있습니까?

오늘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하기 위해 내가 내어드려야 할 영역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성경읽기는 욥기 40-42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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