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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두 가지 은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할쌔.” 역대상 18:13-14 이 두 구절을 조용히 되새기며 다윗의 삶을 묵상합니다. 그는 전쟁터에서는 늘 승리했고, 왕좌에서는 모든 백성을 공평하고 의롭게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윗이 이겼다”고 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승리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나는 오늘 어떤 전장에 나서고 있나요? 직장, 가정, 관계, 미래에 대한 두려움… 매일 출전하는 삶 속에서 다윗처럼 고백하고 싶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든지 주님께서 이기게 하소서.”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동행이 나를 지켜 주신다는 믿음. 이 믿음이 없으면 승리도, 평안도 없습니다. 왕이 된 다윗은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했습니다. 특히 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까지 공평한 마음으로 다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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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hours ago2 min read


관람자와 예배자
역대상 15장 29절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날은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남을 기쁨의 날이었습니다. 왕과 백성들은 한마음으로 소리 지르고 나팔을 불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은 왕의 예복을 벗고 베 에봇을 입은 채, 거리에서 “온 힘을 다하여” 춤추며 뛰놀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돌아온다는 사실이 그토록 기뻤기 때문입니다. 그 절정의 순간, 성경은 한 사람의 시선을 기록합니다. 미갈입니다. 그녀는 행렬에 참여하지 않고 창문에서 내려다보며, 다윗을 마음속으로 업신여겼습니다. 기쁨의 장면 속에 등장한 이 대비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미갈에게 다윗의 모습은 ‘왕의 체면’을 잃은 천박한 행동처럼 보였습니다. 왕이 몸을 낮추고 춤추는 모습이 품위 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참여자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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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ays ago2 min read


“내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으로 그 길을 나아갔습니다. 그 모습은 하나님을 향한 진심 어린 열심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의 행렬은 기돈의 타작마당에서 멈추게 됩니다. 소가 흔들리자 웃사가 언약궤를 붙들었고, 그 순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그는 죽임을 당합니다. 다윗은 당황하고, 분노하며, 두려움 가운데 언약궤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 사건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언약궤는 레위 사람들의 어깨에 메어 옮겨야 하며, 누구도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생각대로, 더 편리해 보이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열심은 진실했지만, 그 열심은 하나님의 방식 위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의 신앙과도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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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ays ago2 min read


나는 어떤 이름을 남길 것인가!
열왕기상하는 인간의 성공이나 업적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했는가”라는 기준으로 왕들을 평가합니다. 눈에 보이는 번영 뒤에 숨겨진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드러내며, 나라의 흥망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역대상하는 같은 역사를 다루면서도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실패를 반복하기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의 흐름 속에서 희망의 계보를 비춥니다. 그 중심에는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다말입니다. 다말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남편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여” 죽임을 당했고, 둘째 오난은 책임을 거부한 채 자신의 이익만을 좇다가 동일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셋째 셀라도 책임을 회피하며, 다말은 철저히 버려진 존재가 됩니다. 당시 문화 속에서 그녀는 보호받지 못한 약자였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는 불운한 여인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책임을 다말에게 돌리지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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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ays ago2 min read


나아만의 강, 자존심이 녹는 곳
나아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시리아 왕의 오른팔이자 군사령관, 명예와 부와 권력을 누리던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치명적인 아픔이 있었습니다. 나병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감추고 싶은 저주와 같은 낙인이었습니다. 그때 한 작은 목소리가 그의 인생을 흔듭니다. 포로로 잡혀온 어린 이스라엘 소녀의 말이었습니다.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가시면 나으실 텐데요.”그 한마디에 나아만은 희망을 품고 길을 나섭니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선지자는 직접 나오지 않고 종을 통해 말합니다.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그 순간 나아만의 자존심이 들끓습니다. 이해되지도, 납득되지도 않았습니다. 왜 하필 요단 강이어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때 부하들이 말합니다. “큰일을 하라 했으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한 번 해보시지요.” 결국 나아만은 순종합니다.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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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42 min read


나에게도 불을 내려주소서!
엘리야는 ‘불의 사람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의 제단이 아니라, 여호와의 제단을 완전히 태워 버린 그 불. 물에 흠뻑 젖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까지도 한 순간에 재로 만들었을 정도로 뜨거운 불! 아하시아 왕이 보낸 군사들을 향해서는 두 번이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켰고, 마침내 엘리야 자신은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불은 하나님의 거룩한 권능이었고, 심판이었으며, 임재 그 자체였습니다. 신약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며 말합니다. “그분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3:11). 오순절, 제자들 머리 위에 불의 혀가 임했을 때, 바로 그 불이 다시 임했습니다. 오! 주여 오늘, 우리 삶의 제단은 어떠한가요? 형식적인 예배와 익숙한 찬양과 바쁜 사역으로 연기만 피어오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짜 불은 사라지고, 따뜻함조차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재만 남아 있지는 않나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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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31 min read


탐욕의 불씨, 결국 삶을 삼키다
오늘의 성경 읽기는 열왕기상 21–22장입니다. 조용히 본문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균열이 얼마나 깊은 어둠으로 번져가는지 보게 됩니다. 아합 왕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단지 포도원 하나를 원했습니다.왕으로서 부족함이 없던 사람이었지만, 바로 곁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이었고, 나봇에게는 지켜야 할 믿음이었습니다. 거절당한 아합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립니다.그의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은 결핍이 아니라,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틈을 통해 죄가 들어옵니다.이세벨의 계략, 거짓 증언, 무고한 죽음.마침내 아합은 포도원을 손에 넣지만, 그 땅에는 이미 피의 흔적이 스며 있었습니다. 탐욕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그것은 조용히 시작되지만, 결국 우리의 마음을 삼키고, 하나님 앞에서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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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22 min read


불을 내려주소서!
열왕기상 18장의 갈멜산은 단순한 사건의 현장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과 우상 사이의 분명한 대조가 드러납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하루 종일 소리치며 몸부림칩니다. 춤을 추고, 자신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정이 가득하고, 매우 인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에는 응답이 없었습니다. 하늘은 조용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섭니다. 그는 무너진 재단을 다시 쌓고, 물을 붓고,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길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여, 이 백성으로 하여금 주께서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옵소서.” 그 짧은 기도 위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십니다. 그 불은 재단과 제물, 그리고 물까지 모두 태워버립니다. 그 모습을 본 백성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 돌아섭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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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12 min read


이제야 알았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밀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를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녀는 매일의 식탁에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밀가루와 마르지 않는 기름 속에서,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심을 날마다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계속되던 어느 날, 아들이 병들어 죽고 맙니다. 절망 속에서 그녀는 엘리야를 원망합니다. “당신이 내 죄를 생각나게 하여 내 아들을 죽게 하려 하였나이까?” 엘리야는 아이를 안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고, 마침내 아이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때서야 그녀는 고백합니다.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왜 그녀의 고백은 ‘이제야’였을까요? 매일의 기적은 분명 은혜였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점점 익숙해지고 당연하게 여겨지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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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02 min read


성전을 세워가라!
다윗은 오랫동안 꿈꾸던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 피 흘린 전쟁의 손길로는 안 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대신 평화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이루시리라 하시니, 다윗은 남은 날들을 성전 재건에 필요한 재료를 아낌없이 모읍니다. 그 설레는 마음이 내게 속삭이네요. 솔로몬이 완성한 성전이 드디어 완성되고 언약궤가 들어서자, 영광의 구름이 가득 차 제사장들조차 숨을 죽입니다. 그 순간 솔로몬의 기도, 하늘 향한 펼친 손 "이 성전에서 백성의 아픔과 회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주를 만나게 하소서. 향하여 기도하면 응답하소서." 그때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예표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십니다. 그 몸인 우리에게 말씀하시죠.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줄, 성령이 너 안에 거하심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오늘 아침, 내 마음 한구석을 더 비우고 성령님을 채워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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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71 min read


솔로몬의 넘치는 지혜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열왕기상 4:29) 솔로몬의 지혜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부어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는 잠언 삼천 개와 노래 천다섯 편을 지었고, 식물과 동물, 새와 물고기까지 자연의 질서를 꿰뚫어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명성은 동양과 애굽의 모든 지혜를 뛰어넘어 사방에 퍼졌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의 지혜는 단순히 많은 지식을 쌓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넓고 깊은 마음 으로 모든 것을 품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판단할 줄 아는 열린 지혜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위로와 약속으로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후히 주셨던 것처럼, 이제는 우리도 구하면 동일한 은혜를 받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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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61 min read


내가 구하는 것은?
한 집에 살던 두 여인이 거의 같은 시기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이가 죽었습니다. 슬픔과 혼란 속에서 한 여인은 죽은 아이를 다른 여인의 살아 있는 아이와 몰래 바꿔치기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두 여인은 서로 “내 아들이다”라며 왕 앞에서 맞섰습니다. 왕은 두 여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다가 갑자기 놀라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살아 있는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씩 주어라.” 그 말에 진짜 어머니는 눈물을 쏟으며 절규했습니다. “아니 됩니다!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셔도 좋으니 살려만 주십시오!” 그러나 다른 여인은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쪼개도 괜찮습니다.” 그 순간, 왕은 진짜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보고 아이를 돌려주었습니다. 그 재판을 지켜본 사람들은 경이로움에 잠겼습니다. “이 왕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구나.” 어린 왕은 사실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종에게 백성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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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52 min read


나를 기뻐하시므로
사무엘하 22장은 다윗이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받은 날, 여호와께 드린 승전의 노래입니다. 시편 18편과 거의 같은 이 장은, 죽음의 물결과 음부의 줄이 자신을 에워쌌던 극한의 환난을 생생히 회상하며 시작합니다. 그 절박한 자리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사무엘하 22:20) ‘나를 기뻐하시므로’라는 표현은 참 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셨다는 뜻을 넘어,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으로 바라보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다윗은 자신이 의롭고 완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한 구절은 다윗의 신앙을 지탱한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거룩하심을 아는 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더 깊이, 하나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 는 관계의 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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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41 min read


더 온전한 사랑
압살롬의 반란은 다윗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아들이 왕위를 빼앗으려 했고, 다윗은 수치와 아픔 속에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그는 크게 울며 외쳤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해 죽었으면 좋았을걸…” 승리의 날이었지만 왕의 슬픔 앞에 백성들은 조용히 머리를 숙였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했지만, 그 사랑이 너무 커서 왕으로서 가정과 공동체를 돌보는 책임을 잠시 잊고 말았습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일어나 백성들을 위로하십시오. ”다윗은 그제야 마음을 추스르고 성문에 나아갔습니다. 그는 압살롬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때로는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지만 단호하지 못했던 결과가 큰 아픔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사랑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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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31 min read


꼭꼭 숨어라, 그러나 하나님은 보신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 11장에서 그는 고의로 죄의 길에 들어섭니다. 전쟁터를 떠나 예루살렘 궁전에 머물던 다윗은 옥상에서 목욕하던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충직한 군인 우리아의 아내임을 알면서도 사람을 보내 데려와 동침했습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선택한 그 행동이 그의 첫 타락이었습니다. 밧세바의 임신 소식이 전해지자, 다윗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죄를 감추려 했습니다. 그는 우리아를 전장에서 불러 아내와 함께 있도록 했지만, 우리아는 동료들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자신만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우리아가 아내와 동침하지 않자, 다윗은 그를 술에 취하게 해 집으로 돌아가게 하려 했으나, 충직한 우리아는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의로운 그의 태도 앞에 다윗은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듭니다. 결국 그는 밀서를 써서 우리아를 치열한 전투 최전선에 세우라 명하고, 자신의 죄를 덮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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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101 min read


은혜
사울 왕가의 마지막 후손, 무비보셋.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요나단과 함께 전쟁터에서 도망치다 떨어져 두 다리를 저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사울의 가문이 몰락한 후, 그는 로드발이라는 외딴 곳에서 ‘죽은 개 같은’ 자신을 한탄하며 숨어 지냈습니다. 왕족의 피를 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버림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불러들입니다. 무비보셋은 두려움에 떨며 엎드립니다. “이 죽은 개 같은 종을 어찌하여 돌아보시나이까?” (삼하 9:8) 그는 왕의 칼이 자신을 벨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드럽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을 위하여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사울의 모든 땅을 네게 돌려주고, 너는 평생 내 식탁에서 왕자들과 함께 먹으리라.” (삼하 9:7) 그 은혜는 무비보셋의 어떤 공로나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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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92 min read


오늘 내가 열어야 할 ‘윈도우’는?
사무엘하 6장은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때 다윗은 온 힘을 다해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옷차림도, 체면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과 감사가 그를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창가에 서 있던 미갈은 그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보며 코웃음 쳤습니다. 그녀의 눈에는 왕으로서의 품위가 먼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기뻐하는 마음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크게 느껴졌던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 안에도 그런 마음이 숨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 손을 들고 찬양하거나, 감사의 눈물로 기도할 때 마음 한켠에서 부끄러움이나 냉소가 스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식어서라기보다, 우리의 시선이 너무 ‘바깥’을 향해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존경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나타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합니다. 즐거워합니다. 기도합니다. 찬양합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우리 자녀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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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81 min read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
사무엘하 1–3장은 사울 왕조의 끝과 다윗 왕조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미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았음에도, 결코 서둘러 왕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간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곧바로 애가를 지어 슬퍼했습니다.“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삼하 1:19)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쫓았던 사울을 향해 그는 “용사”라 부르며 애도했습니다.그 눈물은 단순한 인간적 감정이 아니라,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끝까지 존중한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내전 중에 아브넬이 귀순하려다가 요압에게 암살당했을 때도,다윗은 분노 대신 슬픔으로 반응했습니다.그는 “내가 이 일에 대하여 여호와 앞에서 무죄하노라.”(삼하 3:28)라고 고백하며,아브넬의 장례를 성대히 치렀습니다.복수를 외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에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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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71 min read


다윗처럼 힘을 얻고, 사울처럼 무너지지 말자
사무엘상 29~31장을 묵상할 때,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길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다윗은 블레셋 왕 아기스의 신뢰 속에 머물렀지만,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을 향해 진군하자 깊은 갈등에 빠졌습니다. 동족을 치러 나가야 하는가, 그 마음속에는 고통스러운 질문이 맴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이 닫힌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조용히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다윗은 전장에서 제외되었고, 그는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동족상잔의 죄악과 위험에서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글락으로 돌아온 다윗은 더 깊은 절망을 맞이했습니다. 아말렉의 침략으로 성은 불타고, 가족들과 모든 소유가 사로잡힌 것입니다. 부하들은 분노와 원망으로 그를 돌로 치려 할 정도였습니다. 그 가장 어두운 순간, 성경은 짧고 강하게 기록합니다 — “다윗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더라”(삼상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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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61 min read


십자가에 머물다
십자가를 향한 주님의 걸음은 누구의 강요도 아닌, 사랑의 선택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기드론 시내를 건너 조용히 동산에 서 계셨습니다. 유다와 병사들이 다가올 때, 주님은 평온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니라.” 그 한마디에 무리들이 물러나 땅에 엎드러졌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지키시며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이다”(요 18:9)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 주님은 사랑으로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칼을 들었을 때, 주님은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주님은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 길 끝에 십자가가 있음을 아셨음에도 사랑으로 순종하셨습니다. 빌라도 앞에서도 주님은 한 치의 두려움 없이 진리를 증언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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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3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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