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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위기 앞에서
에스라 8장 21–23절에는 짧지만 깊은 믿음의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위험한 여정을 앞두자, 현실적인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군대를 요청하면 훨씬 안전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멈춰 서서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어쩌면 이 장면이 우리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건강, 재정, 자녀 문제 앞에서기도만으로 버티기에는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러 방법을 함께 찾게 됩니다.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조용히 묻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먼저 찾고 있습니까?” 완벽한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중에도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마음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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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hours ago1 min read


쉽게 가는 길에서 거룩함을 선택하는 용기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리라. 우리도 너희 하나님을 구하는 자니…”(에스라 4:2) 처음 들으면 나쁘지 않은 제안처럼 보입니다. 함께하면 더 빠르고 수월하게 일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갈등 없이 서로 좋게 가는 길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에스라 시대의 백성들은 이 제안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왜 였을까요?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거룩함이 무너지면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을 향한 순수함이 흐려지면, 어떤 외형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 선택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공사는 오랜 시간 중단되었고, 방해와 모함이 계속되었습니다. 타협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일어나 성전은 완공됩니다(6:15). 만약 그들이 타협했다면 성전은 더 빨리 지어졌을지 모르지만,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거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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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ay ago1 min read


기쁨과 눈물이 함께한 성전의 기초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먼저 제단을 쌓고 예배를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포로 귀환 2년째 둘째 달, 드디어 성전의 기초를 놓는 날이 이르렀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다윗 왕 때의 규례를 따라 제금과 수금과 나팔을 울리며 찬양했습니다.“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도다!” 그날 예루살렘은 큰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젊은 세대는 기쁨에 넘쳐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오랜 포로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하나님의 집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눈물이 날 만큼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을 직접 보았던 나이 든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 기초를 바라보며 크게 통곡했습니다. 지금 놓인 기초는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화려하고 웅장했던 솔로몬 성전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그들의 마음에는 감사와 함께 깊은 아쉬움과 상처가 함께 자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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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ays ago1 min read


요시야의 신앙, 오늘 우리에게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었지만,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것은 16세부터였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나라 곳곳의 우상을 과감히 제거하기 시작했어요. 우리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마음 깊이 하나님을 찾고 계신가요? 요즘 우리를 사로잡기 쉬운 우상들은 돈, 성공, 쾌락, SNS,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나 중심의 생각들입니다. 이 작은 우상들이 마음을 조금씩 잠식하지 않도록, 우리도 조용히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성전 수리 중 율법책을 발견한 순간입니다. 요시야는 그 말씀을 듣자마자 옷을 찢으며 회개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듣고 → 회개하고 → 실행하는” 이 흐름이야말로 살아 있는 신앙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성경을 만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이 움직일 때, 그것을 삶으로 옮기는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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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ays ago2 min read


누구의 하나님, 이제는 나의 하나님
여호야다는 유다 역사에서 가장 담대한 멘토였습니다. 왕가가 끊길 위기 속에서 어린 요아스를 숨겼습니다. 그리고 끝내 그를 왕으로 세워 하나님 앞에 서도록 이끌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요아스는 성전을 수리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요아스는 사람들의 아첨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였습니다. 경건해 보였던 삶의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자신을 살리고 세운 은혜조차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분명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누구 때문에 믿고 있는가? 누군가 곁에 있을 때만 유지되는 믿음은 진짜가 아닙니다. 나를 붙들어 주던 부모와 멘토가 사라지면 함께 무너지는 신앙,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기대어 선 믿음입니다. 내 믿음은 무엇 위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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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ays ago1 min read


믿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복된 하루 되시길 기도합니다. 역대하 18장을 읽다 보면 두 왕의 모습이 강하게 대비됩니다.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전쟁을 앞두고 400명의 예언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왕이 듣기 좋은 말만 했습니다. “올라가십시오. 주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합은 그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이미 자기 마음에 든 결정을 내린 뒤였고, 그 결정을 뒷받침해 줄 말만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달랐습니다. 그는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전할 선지자가 없습니까?”(역대하 18:6)그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미가야 선지자가 불려왔고, 그는 왕에게 불리한 예언을 전했습니다. “왕이 올라가시면 패망할 것이요.” 그 말은 아합에게는 미움과 핍박을, 여호사밧에게는 성찰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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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42 min read


아사 왕의 한순간, 우리의 오늘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살피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이다.” (역대하 16:9) 아사 왕은 참으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된 후 35년 동안 한결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우상을 제거했고, 에디오피아의 백만 대군도 기도로 물리쳤습니다. 성경은 그를 “한평생”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한 왕으로 평가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아사 왕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쳐들어왔을 때,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시리아 왕에게 돈을 주고 도움을 구했습니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선지자 하나니의 책망이 그를 향해 날아옵니다. “네가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아람 왕을 의지하였도다.” 이때 아사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다면, 그의 마지막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했습니다. 서운함과 억울함이 마음에 가득 찼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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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32 min read


솔로몬의 지혜, 그리고 그 변질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는 기브온에서 자신을 “작은 아이”라 고백하며 백성을 바르게 재판할 수 있는 “듣는 마음”을 구했습니다(열왕기상 3:7-9). 하나님은 그 겸손을 기뻐하셔서 지혜뿐 아니라 부와 명예까지 더하여 주셨습니다. 처음의 솔로몬은 하나님을 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건축하며 예배의 중심을 세웠고, 그의 지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서서히 변해갔습니다. 많은 은금과 권세, 그리고 수많은 아내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길을 하나씩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신명기 17장). 하나님을 위해 주어진 지혜가 점점 자신을 위한 도구로 바뀌어 갔습니다. 성경은 그를 이렇게 평가합니다.“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였다”(열왕기상 11:6). 이 모습은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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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21 min read


성전의 불, 우리 마음의 불
성전이 완공된 그 감격스러운 날, 솔로몬 왕은 떨리는 음성으로 하늘을 향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 성전을 복의 집으로 삼아 주시고, 주의 백성이 어디서든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그 죄를 사하시고, 들으시며 응답하여 주소서.” 기도가 끝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을 순식간에 태웠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을 가득 채웠고, 온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눈물로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도다!” 그날 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성전을 거룩히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도 들려오는 핵심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내 백성이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며 내 얼굴을 구하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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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11 min read


하나님의 설계
다윗은 생의 마지막 순간, 아들 솔로몬을 불러 마지막 부탁을 남깁니다. “너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간절히 찾으라. 힘을 내고 담대하여 성전을 완성하라.” (대상 28:20) 그는 성전을 짓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금과 은, 철과 나무, 보석에 이르기까지 성전을 위한 모든 것을 차곡차곡 준비했습니다. 마치 자신이 직접 지을 것처럼, 하나하나 세밀하게 마음에 그려가며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더 깊은 비밀이 있습니다. “이 모든 설계는 주님께서 친히 손으로 써서 나에게 알려 주셨다.” (28:19) 성전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시작된 계획이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성막의 설계를 받았듯, 다윗 또한 하나님의 손길로 주어진 청사진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세우는 교회, 우리가 섬기는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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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82 min read


지금이 아니어도, 다음을 준비하며
다윗의 마음은 뜨거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 싶다는 열망, 그것은 단순한 계획이 아니라 그의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열심을 멈추게 하십니다. “너는 짓지 못한다.” 이 말씀은 거절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방식이었습니다. 우리도 비슷한 순간을 만납니다. 간절히 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일,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했지만 멈춰야 하는 시간. 그때 마음은 쉽게 식고, 이유를 묻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어 집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왜 내가 아닌가’에 머물지 않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을 쌓고, 재료를 모으고, 사람을 세우고, 길을 닦았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완성하지 못할 일을 위해 온 마음을 쏟았습니다.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더 깊은 순종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나는 지금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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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72 min read


다윗의 두 가지 은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할쌔.” 역대상 18:13-14 이 두 구절을 조용히 되새기며 다윗의 삶을 묵상합니다. 그는 전쟁터에서는 늘 승리했고, 왕좌에서는 모든 백성을 공평하고 의롭게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윗이 이겼다”고 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승리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셨습니다. 나는 오늘 어떤 전장에 나서고 있나요? 직장, 가정, 관계, 미래에 대한 두려움… 매일 출전하는 삶 속에서 다윗처럼 고백하고 싶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든지 주님께서 이기게 하소서.”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동행이 나를 지켜 주신다는 믿음. 이 믿음이 없으면 승리도, 평안도 없습니다. 왕이 된 다윗은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했습니다. 특히 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까지 공평한 마음으로 다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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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62 min read


관람자와 예배자
역대상 15장 29절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날은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남을 기쁨의 날이었습니다. 왕과 백성들은 한마음으로 소리 지르고 나팔을 불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은 왕의 예복을 벗고 베 에봇을 입은 채, 거리에서 “온 힘을 다하여” 춤추며 뛰놀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돌아온다는 사실이 그토록 기뻤기 때문입니다. 그 절정의 순간, 성경은 한 사람의 시선을 기록합니다. 미갈입니다. 그녀는 행렬에 참여하지 않고 창문에서 내려다보며, 다윗을 마음속으로 업신여겼습니다. 기쁨의 장면 속에 등장한 이 대비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미갈에게 다윗의 모습은 ‘왕의 체면’을 잃은 천박한 행동처럼 보였습니다. 왕이 몸을 낮추고 춤추는 모습이 품위 없어 보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참여자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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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52 min read


“내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으로 그 길을 나아갔습니다. 그 모습은 하나님을 향한 진심 어린 열심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의 행렬은 기돈의 타작마당에서 멈추게 됩니다. 소가 흔들리자 웃사가 언약궤를 붙들었고, 그 순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그는 죽임을 당합니다. 다윗은 당황하고, 분노하며, 두려움 가운데 언약궤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 사건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언약궤는 레위 사람들의 어깨에 메어 옮겨야 하며, 누구도 손을 대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생각대로, 더 편리해 보이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열심은 진실했지만, 그 열심은 하나님의 방식 위에 서 있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의 신앙과도 닮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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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42 min read


나는 어떤 이름을 남길 것인가!
열왕기상하는 인간의 성공이나 업적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했는가”라는 기준으로 왕들을 평가합니다. 눈에 보이는 번영 뒤에 숨겨진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드러내며, 나라의 흥망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역대상하는 같은 역사를 다루면서도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실패를 반복하기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의 흐름 속에서 희망의 계보를 비춥니다. 그 중심에는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다말입니다. 다말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남편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여” 죽임을 당했고, 둘째 오난은 책임을 거부한 채 자신의 이익만을 좇다가 동일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셋째 셀라도 책임을 회피하며, 다말은 철저히 버려진 존재가 됩니다. 당시 문화 속에서 그녀는 보호받지 못한 약자였고,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는 불운한 여인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책임을 다말에게 돌리지 않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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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12 min read


나아만의 강, 자존심이 녹는 곳
나아만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시리아 왕의 오른팔이자 군사령관, 명예와 부와 권력을 누리던 ‘성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치명적인 아픔이 있었습니다. 나병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감추고 싶은 저주와 같은 낙인이었습니다. 그때 한 작은 목소리가 그의 인생을 흔듭니다. 포로로 잡혀온 어린 이스라엘 소녀의 말이었습니다.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가시면 나으실 텐데요.”그 한마디에 나아만은 희망을 품고 길을 나섭니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것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선지자는 직접 나오지 않고 종을 통해 말합니다.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그 순간 나아만의 자존심이 들끓습니다. 이해되지도, 납득되지도 않았습니다. 왜 하필 요단 강이어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때 부하들이 말합니다. “큰일을 하라 했으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한 번 해보시지요.” 결국 나아만은 순종합니다.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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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42 min read


나에게도 불을 내려주소서!
엘리야는 ‘불의 사람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의 제단이 아니라, 여호와의 제단을 완전히 태워 버린 그 불. 물에 흠뻑 젖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까지도 한 순간에 재로 만들었을 정도로 뜨거운 불! 아하시아 왕이 보낸 군사들을 향해서는 두 번이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켰고, 마침내 엘리야 자신은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불은 하나님의 거룩한 권능이었고, 심판이었으며, 임재 그 자체였습니다. 신약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며 말합니다. “그분은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3:11). 오순절, 제자들 머리 위에 불의 혀가 임했을 때, 바로 그 불이 다시 임했습니다. 오! 주여 오늘, 우리 삶의 제단은 어떠한가요? 형식적인 예배와 익숙한 찬양과 바쁜 사역으로 연기만 피어오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짜 불은 사라지고, 따뜻함조차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재만 남아 있지는 않나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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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31 min read


탐욕의 불씨, 결국 삶을 삼키다
오늘의 성경 읽기는 열왕기상 21–22장입니다. 조용히 본문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균열이 얼마나 깊은 어둠으로 번져가는지 보게 됩니다. 아합 왕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단지 포도원 하나를 원했습니다.왕으로서 부족함이 없던 사람이었지만, 바로 곁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이었고, 나봇에게는 지켜야 할 믿음이었습니다. 거절당한 아합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립니다.그의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은 결핍이 아니라,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틈을 통해 죄가 들어옵니다.이세벨의 계략, 거짓 증언, 무고한 죽음.마침내 아합은 포도원을 손에 넣지만, 그 땅에는 이미 피의 흔적이 스며 있었습니다. 탐욕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그것은 조용히 시작되지만, 결국 우리의 마음을 삼키고, 하나님 앞에서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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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22 min read


불을 내려주소서!
열왕기상 18장의 갈멜산은 단순한 사건의 현장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과 우상 사이의 분명한 대조가 드러납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하루 종일 소리치며 몸부림칩니다. 춤을 추고, 자신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열정이 가득하고, 매우 인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에는 응답이 없었습니다. 하늘은 조용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섭니다. 그는 무너진 재단을 다시 쌓고, 물을 붓고,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길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여호와여, 이 백성으로 하여금 주께서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옵소서.” 그 짧은 기도 위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십니다. 그 불은 재단과 제물, 그리고 물까지 모두 태워버립니다. 그 모습을 본 백성들은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 돌아섭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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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12 min read


이제야 알았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밀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를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녀는 매일의 식탁에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밀가루와 마르지 않는 기름 속에서,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심을 날마다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계속되던 어느 날, 아들이 병들어 죽고 맙니다. 절망 속에서 그녀는 엘리야를 원망합니다. “당신이 내 죄를 생각나게 하여 내 아들을 죽게 하려 하였나이까?” 엘리야는 아이를 안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고, 마침내 아이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때서야 그녀는 고백합니다.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왜 그녀의 고백은 ‘이제야’였을까요? 매일의 기적은 분명 은혜였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점점 익숙해지고 당연하게 여겨지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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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02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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