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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으라, 내가 보이리라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 33:2-3) 예레미야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어 무너질 위기에 놓였고, 선지자의 메시지는 외면당했습니다. 모든 것이 절망으로 보이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일을 행하시고,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라고 소개하시며 예레미야를 향해 “부르짖으라”고 초청하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위로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시며, 뜻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선언입니다. “크고 은밀한 일”은 우리의 지혜와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의 회복의 길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듯한 예루살렘을 향해서도 하나님은 치료와 회복, 용서와 기쁨을 약속하셨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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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inutes ago1 min read


원망과 신뢰 사이, 예레미야처럼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는 멸망의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니 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만 홀로 임박한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삶과 안일한 믿음을 지키고 싶었기에, 불편한 진실을 외면했습니다. 그 결과 예레미야는 조롱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고백합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20:9)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는, 소명에 붙잡힌 자의 고통이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우리도 때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앞에서 “왜 이런 길로 이끄십니까?”라고 묻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원망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연결을 끊지 않는 것입니다. 안일한 믿음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면서도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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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ays ago1 min read


절망속에서도 희망의 말씀이
예레미야서는 참으로 ‘눈물의 선지자’가 기록한 슬픔의 책입니다.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며, 죄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반복해서 선포합니다.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고 성전이 무너질 것을 말씀할 때, 읽는 우리의 마음도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희망의 소식을 전파합니다. 곳곳에 소망의 말씀을 심어 주십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7-10) 이 말씀은 시편 1편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세상 풍조나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주님께 뿌리를 내린 사람. 그는 극심한 더위와 가뭄 속에서도 잎이 푸르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 뿌리가 생명의 근원인 주님께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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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days ago1 min read


익숙함의 덫, 은혜의 돌이킴
“구스 사람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할 수 있느냐? 만일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예레미야 13:23) 검은 피부를 하얗게 바꿀 수 없고, 표범의 얼룩을 지울 수 없듯이, 죄악에 깊이 익숙해진 사람은 스스로 선을 행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닙니다. 몸에 배어 버린 삶의 방식이자, 중독처럼 뿌리내린 영적 상태입니다. 유다 백성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죄에 익숙해진 자리에서 진정으로 돌이키지는 않았습니다. 입술로는 회개했지만 삶의 방향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붙잡고 있던 것은 바로 이 깊은 익숙함이었습니다. 예레미야 13장부터 15장은 이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겉으로는 회개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가던 길을 계속 가던 유다. 그 익숙함은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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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ays ago2 min read


왜 악한 자들이 잘 됩니까?
“여호와여, 주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런데 왜 악한 사람들은 이렇게 잘되고, 우리는 이렇게 힘든 겁니까?” 이 질문이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밤마다 이를 악물고 삼키던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도 같은 의문을 품습니다. 왜 악인은 형통하고,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사람들이 더 평안해 보일까요? 그 질문이 마음속에서 자라날 때 우리는 대개 입을 다뭅니다. “믿음 좋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 하면서.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밤을 하나님 앞에 그대로 들고 나갔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정도로 지치면, 앞으로 올 더 큰 시련을 어떻게 견디겠느냐.”그 말씀이 처음엔 차갑게 들립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한 문장이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합니다. “내가 내 집을 버리며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을 원수의 손에 넘겼다.”하나님도 울고 계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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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ays ago1 min read


내가 의지하고 자랑하는 것은?
시대는 눈부시게 변합니다. 인터넷이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고, AI가 인간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어제의 상식이 오늘의 과거가 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집니다. 사람들은 이 예측 불가능한 변화 앞에서 더 많은 정보와 기술을 쫓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지혜를 내세우고, 용맹과 힘을 과시하며, 부유함을 자랑하려 합니다. 예레미야가 살았던 시대에도 그랬고, AI가 일상이 된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형식만 바뀌었을 뿐, “내가 가진 것으로 충분하다”는 성향은 그대로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자와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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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31 min read


겉모습은 보이고, 마음은 감춰진다
오늘 이사야 66장 1–4절을 깊이 묵상해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요, 땅은 그분의 발등상이라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고 높으신 분이신지를 다시 마음에 새기게 합니다.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시며, 우리가 말로 다 닿지 못하는 마음의 깊은 곳까지도 환히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하나님 앞에 겉모습으로 서려 합니다.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입술은 주님을 향하나, 마음은 여전히 자기 자신을 붙들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말씀을 듣고 떠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앞에 서면, 나는 종종 조금 비켜서 있는 나를 보게 됩니다. 내 안에는 여전히 “이 정도는 내가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오래된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기보다, 내 삶의 울타리를 더 단단히 세우고 스스로 지키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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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311 min read


섬김과 사랑의 동기
한 기자가 인도 캘커타에서 마더 테레사를 인터뷰하며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열정이 참 대단하십니다.” 그 말에 마더 테레사는 단호히 잘라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은 열정이 없습니다.” 기자가 당황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녀는 말합니다. “나에게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향한 열정뿐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을 돕기 원하시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참 깊습니다. 사람을 향한 열정은 때로는 아름답지만, 쉽게 지치고 흔들립니다. 기대가 무너지면 식어 버리고, 보상이 없으면 메말라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열정은 그분의 마음을 따라 자연스럽게 가난한 이들에게로 흘러갑니다. 참된 섬김은 바로 거기서 시작됩니다. 이사야 61장 1-2절은 이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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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301 min read


내가 지은 영과 혼이 피곤할까 함이라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니라.” (이사야 57:16) 이 한 구절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에 대해 진노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우리의 영과 혼이 너무 연약해서, 계속되는 심판 앞에서 완전히 지쳐 쓰러질 것을 아셔서 스스로 진노의 한계를 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11절을 보면, “내가 오랫동안 잠잠하였으므로 네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이 아니냐”라고 하십니다. 즉각적인 재앙이나 눈에 보이는 심판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평안한 일상에 취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죄에 대해 둔감해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시며, 그 영과 마음을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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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91 min read


지으신 이를 향한 우리의 자세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빚음을 받은 물건이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 (이사야 29:15-16)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마음을 정확히 보고 계셨습니다.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계획을 세우면서도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며 스스로를 숨기려 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를 평가하려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질문들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출발점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원망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공의와 함께함을 분명히 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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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01 min read


“성벽은 쌓았는데,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둘러싼 위기의 순간, 백성들은 누구보다 부지런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고, 물을 확보하며, 무기를 점검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준비는 철저하고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분주함 속에서 결정적으로 빠진 것이 있었습니다.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다”(이사야 22:11)는 책망은 단순한 종교적 태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백성들은 성벽을 쌓았지만, 그 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물을 모았지만,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준비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이루어진 준비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미래를 대비하고, 삶을 정비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문득 돌아보면, 우리의 시선이 보이는 것들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손에 잡히는 것들이 마음의 안전망이 되고 하나님은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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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71 min read


그날에, 심판과 구원이 만나는 순간
이사야 17~19장을 읽다 보면 ‘그날에’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시리아가 폐허가 되고, 에티오피아가 심판받으며, 이집트가 내전과 기근으로 무너지는 날. 강대국들의 교만이 바스러지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17장에서 야곱의 영광이 시들지만, 바로 그날에 사람들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고” 우상을 버립니다. 19장에서 이집트가 약해져 떨지만, 그날에 제단이 세워지고, 이집트 사람들이 여호와를 알게 되며, 앗수르와 함께 평화의 길을 걷습니다. 하나님은 치시되 고치시고, 무너뜨리시되 세우십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그날’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들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균형을 잃게 만들고 하나님 없이 살려 할 때 우상이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교만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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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61 min read


높아지려는 마음, 그리고 떨어짐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네가 스올에 빠지리라.” (이사야 14:13-15) 살다 보면, 하나님이 정말 지금도 일하고 계신지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점점 어두워지고,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일 때가 그렇습니다.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무너졌고, 유다 역시 불안한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결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과 포로라는 현실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이미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고레스를 통해 길을 여실 것까지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 아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보다 더 넓은 시간 속에서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상황과 장면만 보지만, 하나님은 시작과 끝을 함께 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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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51 min read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 날에 이새의 뿌리가 만민에게 기호로 서리라.” (이사야 11:1, 10) 이 예언이 선포된 것은 다윗 왕조가 바벨론에 의해 철저히 잘려 나간 지 약 150후, 이미 끊어진 듯 보였던 다윗의 가계.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새싹이 돋는다는 선언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하나님의 회복 계획을 보여줍니다. 그 예언은 정확히 이루어졌습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 작은 마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고, 주님은 이사야의 말씀 그대로 선포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외모나 지위가 아니라 마음을 보시며, 억눌린 자를 공의로, 가난한 자를 정의로 다스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악을 이기시고, 부활로 새 생명의 문을 여셨습니다.그분 위에 머무시는 성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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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41 min read


마음의 평안은
주전 8세기 유다는 위기가운데 있었습니다. 전쟁의 위협, 흔들리는 정치, 불안한 미래. 아하스 왕은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힘을 붙들었습니다. 그 선택은 백성에게 더 깊은 불안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뉴스를 보며 느끼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의지처를 찾는 우리의 모습도 그때와 닮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는 뜻밖의 말을 전합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다.” 상황을 바꿀 군대도, 강력한 지도자도 아닌 ‘아기’입니다. 현실을 생각하면 당장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말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계산을 뛰어 넘어 일하십니다. 이 아기는 단순한 위로의 상징이 아닙니다, 통치의 주체입니다.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다”는 말은 우리의 삶을 실제로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내 인생의 방향을 내가 쥐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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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31 min read


부모가 아이에게 읽어주지 않는 성경책
유대인 가정에서는 실제로 그런 책이 있습니다. 바로 아가서입니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보여주지 않고, 영적 성숙을 갖춘 후에야 읽게 했습니다. 이유는 아가서의 아름다운 시적 표현이, 자칫 육체적인 사랑으로만 잘못 이해될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아가서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순간의 느낌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깊게 하는 거룩한 힘입니다. “너는 나를 인처럼 마음에 두고 도장처럼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고, 투기는 스올처럼 강렬하며, 불처럼 타오르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다.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고, 홍수라도 그것을 삼키지 못한다. 사람이 집의 모든 재산을 주고 사랑을 사려 해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가서8: 6-7) 사랑은 도장처럼 마음과 삶에 새겨집니다. 쉽게 사라지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가서는 이 사랑을 ‘여호와의 불’이라고 부릅니다. 태우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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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101 min read


아가서
아가서는 성경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입니다. 겉으로 보면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깊은 속에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언약적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친밀한 사랑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고백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많은 물로도 끌 수 없는 그 사랑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흘러옵니다. 아가서의 장면들 가운데 특히 마음을 붙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바라보며 반복해서 고백하는 사랑의 말입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안에 흠이 없구나.” 이 고백은 단순한 외적인 칭찬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존재 전체’에 대한 선언입니다. 신랑은 신부의 눈과 머리카락, 입술과 볼, 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 어떤 부분도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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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92 min read


향수 속, 한 마리 파리
“헛되고 헛되다”라는 전도서의 말씀은 처음 들으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모든 게 헛되다면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을 다시 살피라는 따뜻한 초대입니다. “작은 어리석음도 조심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10장 1절은 특히 재미있고 날카로운 표현으로 우리를 깨웁니다. “죽은 파리 한 마리가 향유 만드는 자의 기름을 악취 나게 하는 것 같이, 적은 어리석음이 지혜와 존귀를 더럽히느니라.” 값비싼 향수 한 병에 파리 한 마리만 떨어져도 그 향은 영원히 망가집니다. 음식에 파리 한 마리를 발견하면 먹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신뢰, 가족 안의 존경, 직장에서의 평판이 한 번의 작은 거짓말, 순간의 감정 폭발, 계속 미루는 게으름으로 순식간에 악취를 풍길 수 있습니다. SNS에 올린 충동적인 한 마디, 동료에게 툭 던진 날카로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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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81 min read


때를 따라 아름답게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 이민자의 삶은 다양한 ‘때’의 연속입니다. 새로운 땅에 뿌리를 내리려 애쓰는 때가 있고,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는 때, 자녀를 사랑으로 키우는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경제적 어려움과 자녀 문제로 마음이 메마르는 기다림의 시간도 지나갑니다. 그리고 어느 날, 작지만 분명한 열매를 보며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때도 찾아옵니다. 우리의 현실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씨를 뿌리고 정성껏 돌보아도, 예상치 못한 가뭄 같은 어려움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했음에도 기대와 다른 모습 앞에서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그 순간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하며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전도서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전 3:11) 우리의 한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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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71 min read


아무것도 모른다는 고백에서 시작되는 지혜
잠언 30장에서 아굴은 스스로 고백합니다. “나는 짐승만도 못하고,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거룩하신 이를 아는 지식도 없다”. 오늘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지나치게 낮아 보이는 이 고백은, 사실 신앙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만 가능한 고백입니다. 아굴은 자신의 무지를 고백한 뒤, 곧바로 하나님을 향한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는가? 누가 바람을 그 손에 모았는가? 그의 이름이 무엇인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가? 네가 아느냐? 이 질문들은 답을 요구하기보다 인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가장 본질적인 것 앞에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아굴은 그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외가 시작됩니다. 그는 이어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겸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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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62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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