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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앞에서 잠잠해지는 은혜

  • 11 minute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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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6장은 듣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사랑으로 일으키셨는데, 그 사랑이 배신을 당합니다. 59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상처받은 사랑의 공의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말씀이 "그러나"로 열립니다.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사람이 먼저 잘해서 하나님이 돌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배반이 드러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옛사랑을 기억하십니다. 우리가 언약을 붙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의 언약을 붙드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라운 패턴을 발견합니다. 공의가 먼저 선언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자비가 열립니다. 그리고 그 자비는 우리의 회개나 성실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배반이 드러난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이 먼저 옛사랑을 기억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잘하면 사랑받는다'는 논리를 완전히 뒤집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61절은 우리의 자랑을 거둡니다.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회복은 우리의 성실이 받을 대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고 싶어 하시는 자비입니다. 62절에서 그분은 "내 언약"을 세우시고, 그 일로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는 조건을 채워 주는 거래의 신이 아니라, 스스로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이 패턴은 신약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자격이 갖춰지기 전에 사랑이 먼저 왔습니다. 에스겔 16장은 그 은혜의 구조를 구약에서 미리 보여 주는 셈입니다. 공의가 자비를 삼키는 것이 아니라, 자비가 공의를 품는 것입니다.

 

마지막 63절이 은혜의 모습입니다. 모든 행한 일을 용서받은 뒤에야, 지난 일이 기억나고 놀라 부끄러워 입이 닫힙니다. 자비가 먼저 옵니다. 그 자비가 마음을 녹입니다. 꾸중 때문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 아니라, 용서 앞에서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붙들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언약을 자주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나의 신실함이 작아도, 그분의 자비는 더 큽니다. 잘해서 사랑받는 자리가 아니라, 용서받은 자로 서는 자리입니다. 그 자비 안에 머무십시오. 여호와가 먼저 언약을 세우시고, 지금도 그 언약을 지키고 계십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내가 잘해서 사랑받는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나의 성실이 아니라 당신의 언약을 붙드신다고 말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습니까? 잘해서가 아니라, 용서받은 자로 서 있습니까?


2. 63절은 용서받은 뒤에야 지난 일이 기억나고 부끄러워 입이 닫힌다고 말합니다. 꾸중 때문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 아니라, 용서 앞에서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지금 꾸중 앞에서 숙여진 고개인지, 아니면 용서 앞에서 잠잠해진 마음인지 돌아보십시오. 그 차이를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성경 읽기는 에스겔 15-16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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