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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맞이하는 자리로

4 minute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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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장의 한 장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길에 펴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복되시도다” 외쳤습니다. 그 환호 속에는 기대와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도시에, 같은 시간에 모든 이가 그렇게 맞이하진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분을 거부했고, 어떤 이들은 환영하면서도 자기 삶의 한 부분만 내어주었습니다. 기적은 보고 말씀은 들으면서도 자기 권위와 삶의 주도권만큼은 지키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능력이 자기들이 세워 온 질서와 권위를 흔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은,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기보다 판단하는 자리에 서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일부분은 받아들이지만 그 이상을 내려놓기는 원치 않았던 마음. 어쩌면 그것은 특별한 악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익숙하게 살아가는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도 비슷한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것을 충분히 누리면서 마음 한편에 그분을 존경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굳이 믿음과 구원이 그렇게 절실한가?” 하는 생각 속에,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중간 지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보여주는 길은 그 중간 지점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일과 십자가로 나아가신 길은, 부분적인 존경이나 예배만으로는 인간의 무게가 해결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죄의 무게와 죽음의 현실, 관계의 깨어짐은 우리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고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미 지고 있던 짐을 진짜 주인께 맡기고, 그 안에서 참된 안식과 자유를 누리는 일입니다.

 

부분적인 환영은 안전해 보이지만 결국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온전히 맞이하는 자리에서만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그 길을 걸어 들어오십니다. 우리의 부분적인 마음도, 아직 내려놓지 못한 영역도 아시면서 우리를 향해 오십니다. 그 초대 앞에 조금 더 온전한 마음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함께 그 자리로 나아가 보면 좋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장면에서, 나는 지금 어느 자리에 더 가까이 서 있는가? 환호하며 맞이하는 자리인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자리인가, 아니면 일부분만 내어주고 나머지는 내가 지키려는 자리인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가?

 

2. 나의 삶 속에서 ‘이 부분만큼은 내려놓기 어렵다’고 느끼는 영역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 영역을 온전히 맡기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무엇이며, 그 두려움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빛 안에서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오늘의 성경 읽기는 마가복음 11-12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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