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열정의 크기가 아니라

  • 1 minute ago
  • 1 min read

여호와의 증인은 집집을 방문하며 「파수대」를 전합니다. 어떤 동네에서는 자주 보는 장면입니다. 그 열정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열정의 크기가 아니라,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입니다.

 

에스겔 33장 11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삶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무너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잘못된 길에서 돌아와 살기를 기뻐하십니다. “돌이켜라. 그 길에서 돌아오너라.” 이것은 차가운 책망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초청 앞에서도 끊임없이 반대로 행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죄인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살리기를 원하셔서 에스겔을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그 알림은 밀어내는 선언이 아니라, 생명으로 오라는 초청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돌이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오는 것입니다.

구원의 중심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공로나 종교적 노력으로 구원을 얻지 않습니다.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 집을 다녀야 구원받고, 책자를 나눠야 조직 안에서 인정받으며, 방문 횟수가 믿음의 증거가 되는 길은 이와 다릅니다. 열정이 커도, 구원이 사람의 행위와 조직의 테두리에 묶이면 하나님의 마음과 어긋납니다.

 

우리를 살리는 소식은 십자가에서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쌓는 충성이 아니라, 주께서 이미 이루신 은혜를 믿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13). 우리를 향해 활짝 열어 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내가 전하고 있는 것은 ‘살아나라’는 초청인가, 아니면 행위와 조직 안의 인정인가?


2. 구원을 내가 쌓는 충성으로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신 은혜로 붙들고 있는가?


오늘의 성경 읽기는 에스겔 31-33장입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