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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오늘은 늦게시작하는 날이지!

11 minute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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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려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가는 중에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수요일, 한 시간 늦게 시작하는 날이잖아! 다른 날들은 이 시간이 학교 가는 시간이고, 섬머타임이 끝나면서 시계가 한 시간 늦춰진 뒤라 감각이 어긋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와 조금 더 있다가 학교로 향했습니다. 웃어넘길 만한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저와 아내도, 아들도 그 순간 ‘정신이 제대로 깨어 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활의 리듬이 조금만 바뀌어도, 그리고 마음이 온전히 깨어 있지 않으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이 그래서 더 다가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방탕함과 술취함은 쾌락으로 마음을 무디게 하고, 생활의 염려는 걱정으로 마음을 짓누릅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마음이 둔해지고, 중요한 것을 놓칩니다. 그 날은 종말의 날이기도 하고, 우리 각자에게는 죽음이기도 합니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단지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걱정하지 말라’는 도덕적 균형의 이야기로만 읽으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깨어 있으려면, 단순한 자기 관리나 의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육의 지배만 받는 사람은, 방탕함으로 도망가든 염려로 짓눌리든 결국 비슷한 지점에 머뭅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우리는 쾌락에 잠기지 않으면서도 기쁨을 누리고, 염려에 짓눌리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도덕적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영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이라는 묵상이 깊어집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36절). 기도는 걱정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붙드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깨어 있음도 긴장된 경계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지금을 온전히 살아내는 맑은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오늘 아침의 작은 실수는, 시계가 한 시간 바뀌었을 때조차 감각이 어긋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마음이 방탕함이나 염려에 무뎌지면 어떠하겠습니까. 나는 지금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마음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오늘 내 마음이 방탕함이나 생활의 염려로 조금 둔해져 있거나 짓눌려 있는 부분은 어디인가? 그 부분에서 성령께서 나를 어떻게 붙들어 주시길 원하는가?

 

2. 성령의 내주하심 안에서 깨어 있는다는 것은, 오늘 나의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오늘의 성경 읽기는 누가복음 20-21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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