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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하는 아들

3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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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의 공생애는 놀라운 일을 보여 주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아들로 인정하시고 사랑하신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이루셨기 때문에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곧 광야에서 시험이 받습니다. 마귀는 같은 말을 다르게 사용합니다.“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지금 증명해 봐라. 배고프면 돌을 떡으로 만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이 지켜 주시는지 보여라. 세상을 얻고 싶으면 내게 절하라.

 

예수님은 능력이 없어서 거절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들 되심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배고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셨고, 하나님의 보호를 시험하지 않으셨습니다, 천하를 얻는 것보다 하나님만 예배하는 일을 택하셨습니다.

 

우리도 힘든 일을 만나면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하신다면 왜 이 문제가 그대로일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왜 이렇게 불안하고 힘들까.

 

그러나 어려움이 계속된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광야에 계신 예수님도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셨습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면 내려오라”는 조롱을 들으실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의 자녀 됨도 우리의 성과나 능력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잘 해결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순종과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져도 무너질 필요는 없습니다. 상황이 아직 바뀌지 않아도, 기도가 곧바로 응답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도 아들이셨듯이, 우리도 어려움 속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요즘 내 기도 안에는 “만일 정말 함께하신다면, 이것을 보여 주십시오”라는 요구가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그 요구를 내려놓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들의 길을 지키시려고 힘을 쓰지 않으신 장면을 떠올릴 때, 내가 지금 참고 견디는 일과 억지로 증명하려는 일은 어떻게 구분됩니까?

 

오늘의 성경읽기는 마태복음 3-4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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