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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라, 내가 너를 보고 기뻐하고 싶다

1 day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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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서를 읽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습니다. 심판과 멸망의 말씀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사랑보다 진노와 두려움을 먼저 느끼기 쉽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심판을 말씀하실까요?”


스바냐서도 그렇습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여기면서도 우상과 불의와 교만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괜찮다”는 안일함이 그들의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짧게 타일러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심판의 말씀이 길다는 것은 그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이키게 하시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경고가 계속 들린다는 것은, 아직 문이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고, 진노는 그 사랑이 거룩하기에 나오는 반응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잘못된 길을 그냥 두지 못하듯, 하나님도 자기 백성이 무너지는 것을 가만히 보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강하게 심판을 말씀하신 뒤에도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혹시 숨김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3장 17절에서 그 하나님은 백성 가운데 계시며,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로, 그들을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고,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앞의 경고가 길었던 이유는, 이 기쁨을 향한 마음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형식만 남은 신앙,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는 안일함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선지서의 무거운 말씀은 정죄가 아니라 “아직 돌아오라. 내가 너를 보고 기뻐하고 싶다”는 초대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진노를 대신 받으셨기에, 우리는 그 기쁨의 자리로 초대받았습니다. 오늘, 우리를 향해 노래하시는 하나님을 묵상합시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요즘 내 신앙 안에서 “우리는 괜찮다”는 안일함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2. 나를 향해 진노가 아니라 기쁨으로 노래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릴 때, 오늘 내가 돌이켜야 할 구체적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성경 읽기는 스바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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