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이미 주어진 표적

11 minutes ago
1 min read

우리는 날씨를 꽤 잘 읽습니다. 저녁 하늘이 붉으면 “내일은 맑겠구나” 하고, 아침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궂겠구나” 합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십니다. 하늘 모양은 분별하면서 시대의 징조는 분별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표적을 구하던 이들에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사흘을 있었던 것처럼, 인자도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원한 것은 눈을 끄는 이적이었지만, 예수님이 가리키신 표적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마 16:21).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다음입니다. 메시아로 인정받는 자리에서, 그 메시아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길로 가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영광을 보이신 뒤에도 같은 말씀을 다시 하십니다.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 17:22-23). 제자들은 근심하며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갑자기 닥친 일이 아니라, 이미 알고 계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종종 더 분명한 표적과 더 편안한 길을 구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중심 표적은 여전히 십자가와 빈 무덤입니다. 인생의 많은 문제는 환경보다 죄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그 죄를 대신 지시고 끊어졌던 것을 회복하시기 위해서였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은 그 회복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시대를 분별하는 믿음은 다른 표적을 찾아 헤매는 일이 아닙니다. 죄 때문에 죽으시고 회복을 위해 다시 사신 주님을, 지금 우리의 기준으로 붙드는 일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요즘 신앙 안에서 ‘더 분명한 표적’을 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미 주어진 십자가와 부활의 표적을 시대의 중심으로 읽고 있는가.

 

2.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과 다시 사심을 자신의 길로 분명히 아셨던 것처럼, 나는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피하고 싶은 십자가를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는가.


오늘의 성경 읽기는 마태복음 16-17장입니다.

Comments


bottom of page